Q. 음색을 다채롭게 구사하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합니다. 평소에 음색에 관한 고민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머릿속에서 상상한 소리가 연주회장에서 잘 울려 퍼질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늘 어떻게 접근해야 실제 공연에서 원하는 음색이 나올지 고민하죠.

물론 연주자인 제가 악보에서 음악을 잘 걸러내는 과정이 기본이에요. 그렇지만 공연장마다 잔향을 비롯한 음향적 환경이 다 다를뿐더러 피아노마다 고유의 소리가 있잖아요. 개인 피아노로 연습하는 것과는 또 다른 적응 과정이 필요해요.

Q. 음색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조율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 편인가요?

이탈리아에서 피아노 상태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아쉽게도 당시의 조율사와는 영어로 세부적인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죠. 어쩔 수 없이 기본적인 부분만 점검하고 공연에 임했어요. 그날은 원하는 만큼 피아노에서 아름다운 울림이 나오지는 않았죠.

때로는 연주자가 감당하기 힘든 피아노를 만날 때가 있어요. 상황에 따라서는 조율사와 함께 악기 상태를 바로잡아야죠. 그렇지만 조율사에게 많이 요구하는 편은 아니에요. 특히 국내 주요 콘서트홀의 피아노 상태는 비교적 고른 편이거든요.

Q. 피아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연주로 조정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한 가지 경험을 예시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미국에서 건반별로 소리가 고르지 않은 피아노를 접한 적이 있어요. 특정 음의 상태를 기억했다가 무대 위에서 균형을 맞춰야만 했죠. 이를테면 솔의 건반의 소리가 약하면 그 음을 칠 때만 더 강하게 눌러가며 연주했어요. 다행히 그날 연주가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죠.

이를테면 피아니스트는 그 자체로 작은 조율사가 아닐까요. 항상 완벽한 조율 상태를 갖춘 피아노를 만날 수가 없잖아요. 무대 위에 올라간 이상 어떻게든 피아노 상태에 적응해가면서 연주할 수 있어야 해요.

Q. 공연장마다 여러 피아노가 있잖아요. 주로 어떤 기준으로 피아노를 택하나요?

해외에서 공연할 적에는 여러 브랜드 중에서 골라야 할 때가 많아요. 제 경우에는 십중팔구 스타인웨이를 골라요. 개인적으로 스타인웨이가 편하거든요.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뵈젠도르퍼를 택하기도 하지만요.

반면 한국에서는 스타인웨이를 여러 대 보유하는 공연장이 많아요. 같은 브랜드라 해도 피아노마다 색깔이 다 달라요. 이런 경우에 제 취향보다는 공연장에서 추천하는 피아노로 연주할 때가 많아요. 제 손에 맞는 피아노라고 해서 꼭 객석까지 소리가 잘 전달되지는 않더라고요.

Q. 대형 공연장에서는 전달력과 표현력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요?

절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 손을 내리찍는 연주를 싫어해요. 그저 제게 정해진 볼륨 안에서 꽉 찬 울림을 내고 싶어요. 작고 단단한 소리로 공연장 뒤편까지 전달할 수 있게 신경을 써서 건반을 두드려요.

저 역시 전달력에 관한 해답을 찾은 건 아니에요. 특히 협연할 때는 오케스트라와의 균형을 비롯해 피아노 상태부터 공연장의 반사음까지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아요. 무대 경험이 쌓일수록 더 노련해질 거라 여기고 있어요.

Q. 해석에 포인트가 적다는 지적과 동시에 연주가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평을 받습니다. 특별히 의도한 부분인가요?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나서도 준비하는 곡을 시종일관 흥얼거리곤 해요. 입에서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붙었을 때야 비로소 연주가 물 흐르듯이 진행되곤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과한 루바토를 쓴다거나, 타이밍을 일부러 길게 끄는 등 극단적인 해석으로 나가지 않도록 경계해요.

또한, 연주일이 가까워지면 부분부분 녹음해서 사전 점검을 해요. 메타 차원에서 제 연주를 감상하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나 과하게 힘이 들어간 지점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연주하는 순간에는 인지하지 못해도 직접 들어보면 알 수 있어요. 무대 오르기 전에 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흐름이 나와야죠.

Q. 입으로 흐름을 다듬는 과정을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곡 전체를 입으로 다 부르지는 않아요. 특정 멜로디가 도드라진다거나, 음악적인 흐름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입으로 따라 해보는 거죠. 이렇게 부분부분 다듬어 머릿속에서 합치면 곡 전체가 자연스럽게 보정돼요.

물론 상상한 음악을 실제 연주로 구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에요. 쉽게 말해 머릿속에 그려진 흐름을 제 손이 따라가기 어려울 때도 있죠. 그런 지점에서는 현실적인 접근하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사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어요.

Q. 기교적으로는 뛰어난 편이신데도 손으로 따라가기 어렵나요?

당연히 있죠. (웃음)

예를 들어 러시안 레퍼토리는 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요. 그렇지만 이 작품들을 피아노로 다룰 때면 저 스스로 불편한 지점이 느껴져요. 테크닉을 광의적으로 정의하자면, 단순히 음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음악을 온전히 구현하는 능력이라고 봐요.
평생 연습하면서 이상에 가까워져 가는 거죠. 어느 경지에 도달하고 아니냐의 개념이 아니라요.

Q. 곡 해석할 때 초판 악보를 보는 편인가요?

반드시 ‘초판 악보를 봐야겠다’라는 강박관념은 없어요. 여러 악보를 비교해서 보는 편이고, 때로는 다른 음반을 듣기도 해요. 물론 내가 알던 곡에서 다른 음표가 들리거나, 무언가 다른 부분이 느껴지면 해당 연주에 쓰인 판본과 초판을 동시에 찾아서 연구하긴 하죠.

Q. 악보 외에 작곡가가 남긴 기록을 참고해서 보나요?

평소에 음악에 관한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크리스티양 쟈크가 쓴 소설에서는 모차르트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묘사된 모습과 정반대의 이미지로 등장해요. 개인적으로도 모차르트의 곡에서 연극적인 장치를 강조할 때보다 영적인 무언가를 부각했을 때 곡 해석도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자서전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보지만, 작곡가 자체를 공부한다는 목적으로 읽지는 않아요. 오페라를 순수하게 즐기면 그 작곡가의 다른 편성 작품의 이해도가 자연스럽게 좋아지듯이 책을 찾아볼 때도 내적 호기심이 우선이에요. 그래서 음악 외의 장르도 많이 읽는 편이에요.

Q. 연주할 때 확 끌리는 작곡가가 있나요?

연습할 때와 무대에 설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연습실에서 연주할 때는 어느 작곡가나 다 몰입해서 하죠. 그런데 무대에 딱 올라가면 유독 심적으로 편한 작곡가가 있어요. 예를 들면 슈만의 작품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낼 수 있을 만큼 확 와닿는 게 있어요. 모차르트나 브람스의 작품을 다룰 때도 비슷하고요.

Q. 원래는 4월에 예정된 리사이틀이 취소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은 프로그램으로 다시 공연을 추진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많이 준비한 공연이라 아쉽지만, 신종 코로나 확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강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제 공연계가 정상화 될지 몰라서 정확히 어느 시점에 다시 공연을 진행할지 확답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렇지만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를 주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반드시 올 거예요.

Q. 리사이틀 뿐만 아니라 레코딩 일정도 연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원래 3월 중순에 파리에서 클라리네티스트 로망 귀요와 함께 베버, 슈만, 멘델스존의 작품을 녹음할 계획이었어요. 그 일정에 맞춰서 제네바에서 며칠 동안 리허설을 진행했지만, 파리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에 현지에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죠. 불가피하게 진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올해 하반기에 다시 일정을 조정해서 레코딩은 진행할 것 같아요.

Q. 4월 말에 열리는 <세종 체임버시리즈Ⅰ-김다미 문지영 듀오>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합니다. 특별히 브람스 작품을 집중해서 다루는 이유가 있나요?

지난 2018년에 열린 <김다미 문지영 듀오 리사이틀>에서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정말 행복하게 연주했어요. 그 후에 다미 언니께서 올해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죠. 저로서는 바라던 기회였고, 그만큼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어요.

이렇게 먼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기로 결정되었어요. 듀오 공연 프로그램이 취소된 제 리사이틀 프로그램에서 브람스를 택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죠. 계획대로라면 같은 시기에 한 작곡가를 심도 있게 다룰 수 있었겠죠.

Q.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에 대해 짤막하게 말씀해주세요.

신종 코로나로 인해서 연간 계획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세부적인 일정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 올해는 거주지를 유럽으로 옮길 계획이에요. 더불어 피아노 독주회, 국내외 오케스트라 협연과 더불어 유럽 음악 페스티벌 무대 등에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공연장 문이 다시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