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현재 순회공연 <나의 클라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한국에 들어온 날에는 시차 때문에 피로했죠. 귀국 직후 열린 쇼케이스에서 한 연주도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투어 기간에 맞춰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바로 적응했어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 Jino Park

Q.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나요?

미국과 유럽을 계속해서 오가거나, 미국 내에서도 시간대가 다른 지역을 이동할 때가 많아요. 여러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지만, 그만큼 체력 유지를 위해서 감당할 몫이 점점 많아져요.

피아니스트도 인간이니까 몸 상태에 따라 연주가 흔들릴 수는 있어요. 그렇다 해도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말해야죠.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가 없다고 여겨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100%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늘 노력할 뿐이에요.

Q. 평소에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어요. 다만 몸 상태를 고려해서 식단을 마련해요. 이를테면 힘이 없을 때는 단백질 섭취를 늘려요. 샐러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균형이 잡힌 영양 보충을 위해서 챙겨 먹고 있어요. 물론 건강을 위해 샐러드에 드레싱을 적게 하죠.

지나치게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몸이 무겁고 불편한 느낌이 맴돌아요. 그래서 탄수화물 섭취가 과하지 않게 조절하는 날이 많아요. 또한, 날씨가 좋지 않으면 해산물을 먹질 않아요.

Q. 연주 경험이 쌓이면서 컨디션 관리에 능숙해졌나요?

재작년 12월에 대구 리사이틀에서 코감기로 고생했어요. 아무래도 코를 훌쩍거리며 연주하니까 집중력이 평소보다는 떨어졌죠. 이럴 때마다 관객께 죄송한 마음이 들뿐더러 저 자신에게도 후회스럽거든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강 관리법을 꽤 익혔어요. 기관지 문제가 발생하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겪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Q. 작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소화했습니다. 연주 횟수가 많으면 부담가지 않나요?

물론 쉬는 시간은 꼭 필요하죠. 그렇지만 2~3주 넘게 쉬면 오히려 저 자신이 죽어 지내는 것 같아요. 일을 쉬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몸과 머리가 썩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거든요.

연주자는 무대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고령까지 건강한 삶을 산다고 하잖아요. 피아노와 함께 다양한 감정을 다루는 일이 사람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Q. 독일로 거주지를 옮긴 지 3년이 되셨습니다. 독일어로 된 지시어가 더 와닿는 면은 있나요?

독일어를 더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주 기초적인 부분은 공부했지만, 연주 일정 때문에 제대로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거든요. 아무래도 현지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면 지시어를 포함해서 음악적으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거예요.

이를테면 독일 음악의 프레이징은 독일어 딕션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독일어 억양과 구조에서 그들의 음악이 느껴지거든요. 특히 독일 가곡을 다룰 때 언어와 음악의 유사성을 깊이 체감했어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Jeremy Enlow_The Cliburn

Q. 이번 프로그램의 곡들은 어떤 에디션으로 준비합니까?

보통은 ‘헨레(Henle)’와 ‘베렌라이터(Barenreiter)’에서 출판한 악보를 선호해요. 다만 이번 공연에서 클라라 슈만의 작품은 ‘호프마이스터(friedrich hofmeister)’ 판을 구해서 봤어요. 아마 클라라 슈만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에도 같은 에디션을 썼을 거예요.

또한, ‘슈만 판타지’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모두 헬레 악보로 준비했어요.

Q. 악보에 메트로놈 마킹이 된 경우에 최대한 지키는 편인가요?

다 지킨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곡가에 따라서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마킹 자체가 없거나 참고 성격으로만 달아 놓은 경우가 있어요.

이번 프로그램 중에서 슈만 판타지에 템포 마킹이 있기는 있어요. 메트로놈을 켜고 악보를 따라 읽으면, 해당 속도로 연주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거든요. 물론 2악장의 경우는 비슷하게 따라가긴 하지만요.

Q. 어떤 이유로 지시 템포와 실제 연주가 맞질 않는 건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와 당시 메트로놈이 다소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지시 템포로 연주하면 극도로 빠른 연주가 되거든요. 또한, 연주자는 기계가 아니어서 작곡가의 지시 템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지키기 쉽지 않아요.

궁극적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체화할 수 있게 집중하죠. 지시 템포는 음악적 흐름을 가늠하는 단서가 되거든요. 또한, 해석에 제 주관이 너무 짙어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해요.

Q. 1부 프로그램은 모두 작곡 시기가 1836년이고, 2부의 브람스 작품은 1854년입니다. 피아니스트의 시각에서 작곡 시기 차이를 느끼나요?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작곡 시기에 따른 차이를 느낄 수 있어요. 후대의 기준에서 낭만이냐 고전이냐 큰 구분을 하지만, 각 시기 안에서도 점점 형태가 변하는 걸 감지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이번 프로그램보다 앞 시기에 탄생한 작품은 감정을 절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1830년, 1840년 계속해서 뒤로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심경이 드러날뿐더러 대화하듯 감정선이 이어져요. 낭만 시대가 진행될수록 선율을 포함한 작곡 형태가 감정 표출에 중점을 두는 걸 느낄 수 있어요.

Q. 클라라 슈만의 노투르노와 슈만 판타지는 비슷한 감정선으로 흐르나요?

두 작품은 집안 반대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이 떨어져 지낸 시기에 탄생했어요. 슈만 판타지 1악장은 보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담겨 있죠. 가슴이 메도록 안타까운 상황을 떠올리며 피아노 소리에 애통한 감정을 실어낼 수 있어요.

클라라 슈만의 노투르노는 장조로 이뤄졌지만, 마냥 밟지만은 않아요. 비유하자면 쓰라린 미소랄까요. 특히 이 곡은 A-B-A 구조에서 B 세션으로 넘어가기 전에 ‘con grazia’라고 지시된 부분이 있어요. 여기서 애잔한 감정이 더 진하게 느껴져요. 마치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듯이요.

Q. 이번 프로그램은 슈만 부부와 브람스의 스토리로 엮였지만, 음악적인 연결고리는 다소 느슨한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클라라 슈만의 노투르노와 로베르트 슈만 판타지는 도입부의 오른손 선율과 왼손의 화성적 형태가 닮았죠. 물론 노투르노는 ‘뱃노래(barcarolle)’ 성격이 있고, 슈만 판타지는 격동적으로 물결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두 작품에서 묻어나는 아련한 감정과 사색적인 분위기는 비슷해요.

또한, 브람스 소나타 3번은 아마 슈만에게 직접 의견을 받은 마지막 작품일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음악적인 연결고리는 느슨하긴 하죠. 오히려 슈만 판타지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대조적이에요. 슈만 판타지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공에 음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다가와요. 반면 브람스 소나타 3번은 더 밀도가 높아요.

Q. 슈만 판타지는 소나타 형식의 환상곡이자 순환 형식을 썼다는 점에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D.760)’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슈베르트의 환상곡을 다루실 때와 이번 슈만 판타지를 해석하실 때 비슷한 점은 있나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은 악장이 연결된 형태에요. 반면 슈만 판타지는 원래 1악장만 완성되었다가 베토벤 기념비를 모금하기 위해 추가로 악장을 붙여서 발표한 곡이죠. 제가 느끼기에 두 작품의 음악적 흐름이나 뉘앙스가 다르게 다가와요.

슈만 판타지는 환상곡이란 제목보다는 오히려 작품에 붙은 슐레겔의 시가 감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소리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거든요.

Durch alle Tone tonet 모든 울림을 비집고 나와

Im bunten Erdentraum 이 땅이 지닌 온갖 꿈을 거쳐

Ein leiser Ton gezogen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소리에

Fur den, der heimlich lauschet 남몰래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슈만 판타지에 붙은 슐레겔(Friedrich Schlegel, 1772-1829)의 시

 

Q. 슈만 판타지에 인용한 시의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서 어디에 중점을 두었나요?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소리로 그려내도록 고민하죠. 그렇지만 피아노는 구조상 한번 낸 소리는 물리적으로 음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요. 피아노의 한계와 성질을 잘 파악해서 청자가 소리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죠.

예를 들어 1악장의 114마디부터 119마디는 한 음을 스포르찬도로 강조한 뒤에 붙임줄로 뒤에 오는 음과 이어지도록 했어요. 이 과정을 통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점 확장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울림이 좋은 공연장에서는 더 잘 나타나요.

Q. 브람스는 피아노 소나타 3번 2악장에 ‘슈터나우(C. Sternau, 1823-1862)’의 <젊은 날의 사랑>을 붙였습니다. 이 시의 뉘앙스가 실제 연주에 영향을 미치나요?

아마도 제가 10대 후반에 이 곡을 처음 쳤을 거예요. 당시에는 곡에 대한 자료나 시대상에 대해서 세심하게 찾아보진 않았거든요. 그저 악보만 놓고 연주를 했을 때, 어두운 곳에서 멀리 빛이 빛나는 듯한 장면이 그려졌어요.

작곡 당시에 브람스가 겪은 감흥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곡에 담긴 감정을 잘 대변하기 위해 비슷한 배경을 지닌 문학작품을 인용했을 거예요. 즉 시를 통해서 작곡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Q. 악보에 인용한 글이 음악적 상상력에 방해가 된 적이 있나요?

작곡가가 직접 인용한 경우에는 방해받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후대 연주자를 위해 신경을 써주신 작곡가께 감사하죠. 반면 출판 과정에서 마케팅 성격으로 붙은 인용구나 표제를 접할 때가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작품 해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Q. 슈만 판타지보다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이 음향적으로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런 차이에 따른 감정 이입은 다른가요?

곡의 규모에 따라서 쏟는 감정이 달라지진 않아요. 예를 들어 클라라 슈만의 노투르노는 곡 길이도 짧고 다이내믹이 단조롭지만, 마음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어느 곡을 연주해도 그 순간에 몰입하고 주어진 감정에 충실하게 임해요.

물론 연주에 소모하는 체력에 차이는 있어요. (웃음)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 Jeremy Enlow /Cliburn

Q. 무대에서 ‘관객의 귀’로 연주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귀를 열어두는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커티스 음악원에서 세이무어 립킨 선생님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웠어요. 우선 원하는 소리를 상상하고, 실제로 연주로 잘 구현되는지 듣고, 이 소리가 공간을 어떻게 울리는지 파악하고, 다음에 내는 소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게 귀를 열어두어야죠.

독주할 때나, 실내악을 할 때나 들어야 할 소리의 범위가 달라질 뿐이에요. 어느 무대에서나 소리에 집중하는 과정은 똑같아요.

Q. 마지막으로 올해 국내 일정을 소개해주세요.

오는 12월에 덴마크 로열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해요. 이 공연이 열리기 전에도 한국에 몇 차례 들어올 것 같아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협의 중인 국내 공연이 있기는 있어요.

우선은 순회공연을 잘 마무리 짓겠어요. 곧 좋은 소식을 들려 드릴게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