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작년 11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연주하신 ‘드뷔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피아노 음량이 조금 작다고 느껴졌는데 의도하신 건가요?

드뷔시 작품은 특유의 섬세하고 가벼운 터치와 다채로운 표현을 요구해요. 이를 살리는 과정에서 음량이 부족했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피아노 소리로 끌어당기는, 즉 관객이 스스로 귀를 열고 소리에 다가오게 한 연주라고 생각해요.

드뷔시 작품에서 음량과 음색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짤막하게 말씀해주세요.

드뷔시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피아노 작품에서 다양한 음색을 표현하려면 넓은 폭의 음량을 낼 줄 알아야 해요. 인상주의 시기는 곡의 정교함과 구성을 중요시한 고전주의와는 달리 자유롭고 다채로움을 추구한 시기거든요.

드뷔시는 악보에 지시어를 세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낭만주의는 대개 문학작품의 전설, 신화, 영웅 등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인상주의는 실존하는 대상을 음악으로 재현해요. 대부분 작품에 부제가 있을뿐더러 작곡가가 원하는 음악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지시어가 많죠. 그래서 드뷔시, 라벨 등 인상주의 작품에 상대적으로 지시어가 많이 적혀있어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드뷔시 영상 2권의 1번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악보에는 ‘무지갯빛 안개처럼’이라는 지시어가 있어요. 무지갯빛 안개를 자유롭게 상상하여 피아노 연주로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죠. 인상주의 음악에서는 이처럼 작은 지시어들이 모여 하나의 큰 주제를 이루어가며 전체를 그려내는 것이 중요해요. 반면 낭만주의 음악에서는 이렇게 상세하게 지시를 하지 않을뿐더러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요.

지시어의 뉘앙스를 익힐 때는 어떻게 합니까?

작곡가마다, 작품마다 지시어의 구체성과 스타일이 다 달라요. 그렇지만 작품을 연습할 때 지시어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과정은 같아요. 지시어는 외우는 게 아니라 스며든다고 생각해요. 한 번 이해하고 체화하면 일부러 떠올릴 필요가 없어요.

악보에서 음악을 표현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악보는 작곡가를 이해하는 첫 단계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아요. 작곡가와 그의 음악적 언어를 알아가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않죠.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음악을 접함과 동시에 악보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해요.

작곡가의 심리와 음악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작품을 함께 연구해요. 해당 작곡가의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골고루 공부하면 표현력에 확실히 도움이 되거든요. 또한, 작곡 당시에 작곡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연구하죠.

다른 편성의 작품을 공부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둡니까?

특히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 독주곡만 듣고 연구할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악기 소리에 대해 연구해야 해요. 저 같은 경우 열 손가락이 제각각 다른 악기의 음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죠.

베토벤의 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초기 작품들은 그가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에 기초로 쓰였어요. 그래서 중기, 후기 소나타와 비교해서 오케스트라 주법이 많이 느껴져요.

저는 고전 작품을 연구할 때 오케스트라 또는 실내악으로 편곡한다고 가정하고 바라볼 때가 많아요. 피아노를 통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악기의 음색을 상상 및 구현을 해나가죠.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 음악을 들을 때면 늘 그런 상상을 하곤 했어요.

언제 피아노를 시작했나요?

울산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취미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어요. 점점 음악을 진지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죠.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꿈을 위해서 가족이 전부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이때 전공을 위한 레슨도 처음 받아봤어요.

피아노를 굉장히 늦게 시작한 편이네요. 그 나이에 시작해도 전문 연주자가 될 수 있나요?

부모님께서 클래식 애호가세요.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어머니께서는 저를 임신하셨을 때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하셨대요.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기 때문에 피아노와 친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다만 피아노를 뒤늦게 시작해서 예원 입시에서 떨어졌고요. (웃음)

예술학교가 아닌 일반 중학교를 나오신 건가요?

네, 인문계 중학교를 나왔어요. 부모님께 서울예고에 떨어지면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고 3년 내내 학교 공부와 피아노 연습을 병행했어요.

학업과 피아노를 병행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던가요?

학교에서는 공부에 열중했고, 하교하면 곧바로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죠. 3년 동안 친구들과 추억이 거의 없을 만큼 피아노에 열정을 쏟았어요. 만약 이 시기를 이렇게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을 갖추기 어려웠을 거예요.

인문계 학교에 다니면 피아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나요?

물론 주위에 전공생이 없으니 제가 어느 위치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여러 청소년 콩쿠르에 도전했는데 바로 우승 및 입상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조선일보 콩쿠르에서 우승 후 ‘젊은이의 음악제’에 참가하면서 예원 학생들 사이에서도 제가 알려졌다고 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서울예고에 실기 특례입학 및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대학 시절 국내외 콩쿠르에서 많은 성과를 낸 후 독일에 유학을 가셨습니다. 콩쿠르에 계속해서 도전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에 국내외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콩쿠르에서는 다 보여줄 수 없었어요. 계속되는 콩쿠르 도전이 어느 순간 싫증이 났고 레퍼토리에 대한 갈증이 이어졌죠. 유학과 동시에 콩쿠르 도전을 잠시 멈추고 레퍼토리를 꾸준히 넓히며 순수 음악을 공부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었어요.

저는 콩쿠르 우승과는 별개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만약 그때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했더라면 지금처럼 음악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거예요. 오히려 과거에 평생 얽매였을 수도 있죠.

독일 유학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뉘른베르크 근교에서 생활했어요. 학교까지 편도로 2시간 가까이 걸렸고, 버스가 오후 4시에 끊길 정도로 외진 곳이었죠. 하지만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으며 레퍼토리를 늘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졸업 직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럽 현지에서 활동하면 인맥을 넓히거나 연주 기회를 찾기 수월할 거예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첫 사례가 되고 싶어요.

물론 주변에서 저의 이른 귀국(당시 만24세)을 반대했어요. 이를테면 한국에 돌아올 때 ‘또 다른 유학’을 간다는 마음가짐이었죠. 한국에서 시작해서 활동 무대를 점점 넓혀가겠다고 다짐했어요.

2016년부터는 ‘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예프 시리즈’ 공연과 앨범을 동시에 진행하고 계십니다. 음반과 실황 공연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잘 만들어진 음반은 책이나 영화에 비유할 수 있어요. 음반을 통해 사람들에게 논리정연하고 다듬어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연주의 진가는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대와 관객이 교감하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거든요.

같은 곡으로 순회공연을 하실 때 해석이 바뀌는 편인가요? 해석은 유지하고 홀 음향을 따라 울림을 바로잡는 편인가요?

전국 순회공연을 할 때 매번 조금씩 다른 감성을 가지고 무대에 올랐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부분에서 하늘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한다고 쳐요. 그날 공연장 분위기와 제 감성에 따라서 신선한 하늘, 화창한 하늘 또는 노을 진 하늘 등 표현하는 하늘이 바뀌는 거죠. 이렇게 해석의 관념을 유지하는 선에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올해 주요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오는 9월 28일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라흐마니노프&프로코피예프> 시리즈 3번째 리사이틀이 열려요. 또한, 제가 음악감독을 맡은 <영 아티스트 포럼 & 페스티벌>이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새로 개관한 S씨어터에서 열립니다.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피아니스트 한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