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어떤 계기로 피아노를 시작했나요?

6살 때 집에 있는 전자피아노를 가지고 놀았어요. 이런 모습을 본 부모님께서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셨죠. 당시에 같은 건물 2층에 계신 피아노 선생님 댁에서 개인지도를 받았어요. 전공하려는 목적으로 피아노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배웠죠.

취미에서 전공으로 넘어간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때 안양음악제 피아노 부문에 나갔어요. 집안에서는 제가 취미로 다년간 연주했으니까 장려상 정도는 기대했어요. 그렇지만 처음 대회에 나가서 아무런 상도 타지 못했죠. (웃음)

탈락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다음 대회에서 성과를 낼 것 같았거든요. 이를 계기로 지역에서 큰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어요.

다음 대회에서 성과를 냈나요?

이듬해 안양음악제에서 피아노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어요. 이 경험을 기점으로 피아노 연주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어요. 제 삶에서 피아노가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한 거죠.

같은 학원에 다니는 형, 누나들이 예원학교에 진학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또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넘어갈 무렵에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가까워져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죠. 이때부터 전공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해요.

콩쿠르 때 연주를 보면 퀵모션이 많습니다. 특별히 음량을 위해 의도한 건가요?

객석까지 들리도록 몸을 활용해서 연주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대회 때는 긴장해서 불필요하게 몸을 쓰는 지점이 있어요.

요즘은 어릴 때부터 굳어온 습관을 줄이고 연주 동작을 더 간결하게 다듬고 있어요. 아무래도 자세가 바르면 제 연주를 더 들으면서 칠 수 있거든요.

연주 동작에 관해서 특별히 지도해주신 분이 계신가요?

로버트 맥도날드 교수님께서 건반을 누르는 손 모양부터 몸동작까지 신경을 써서 가르쳐 주셨어요. 같은 소리를 내더라도 과정이 더 좋다면, 나중에 응용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잖아요. 아마도 제가 연주자로 오래 활동할 수 있도록 올바른 자세로 교정을 해주신 것 같아요.

건반을 안쪽으로 깊게 누르는 편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활용하나요?

제 손을 벌려서 연주하면 편하게 10도를 짚고, 불편하게 11도까지 벌어져요. 손이 조금 긴 편이라서 건반 안쪽까지 자연스럽게 짚이거든요. 특별히 터치 영역을 늘리려고 의식하진 않았어요.

음색을 다양하게 구사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눕히듯이 건반을 누르는 건가요?

흔히 피아노를 배울 때 “달걀을 쥐듯이 오므리고 쳐라”라는 말을 듣잖아요. 어렸을 적에는 이런 손 모양을 하고 손끝으로 주로 터치를 했어요. 그렇지만 정석적인 모양만으로는 다양한 색을 내기에 한계가 있기도 해요.

점점 손끝보다 뭉툭한 부분을 활용해서 건반을 누르는 빈도가 높아졌죠. 지금은 너무 손가락을 눕혀 치는 것 같아서 다시 손끝으로 치는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피아노 소리를 정교하게 다듬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피아니스트로서 소리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명연주를 접하면서 소리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도 하고, 저 스스로 연습하는 과정에서 귀가 열리기도 해요.

특히 강충모 선생님께 소리에 관해서 많은 지도를 받았어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리’라는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볼 때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해요.

머릿속에 떠오른 소리를 연주로 옮기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말하자면 머리와 손이 동기화가 되어야 하잖아요. 아무리 머릿속에 좋은 음형이 있어도 손으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어요. 건반을 두드리는 손 감각을 기준으로 점점 소리를 잡아가요.

공연장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점검합니까?

피아노 건반을 쳤을 때 미끄러운가 그렇지 않은가를 점검하죠. 손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서 건반이 미끄러우면 연주 전부터 각오해야 해요.

특히 흑건이 나무 재질이어야 좋아요. 건반에 합성 재질을 쓰는 피아노는 미끄러워서 다루기 쉽지 않아요.

주로 콘서트 마이스터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페달이 약해서 더 깊게 밟을 수 있게 조정해달라고 요구한 적은 있어요. 그렇지만 연주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나쁜 피아노를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제가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 앞으로 피아노 세팅에도 관심을 두려고 해요.

모든 레퍼토리를 잘하고 싶다고 발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호하는 작곡가가 있습니까?

가장 오래 연구한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해 베토벤, 리스트 등 선호하는 작곡가는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레퍼토리를 두루 잘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지난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를 연상케 했습니다. 템포를 낮추고 음을 또렷하게 구사한 점이 인상적인데, 특별히 이렇게 곡에 접근한 이유가 있나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아쉬케나지 연주를 정말로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마른 체형이란 점이 닮아서 소리가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고요.

템포는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이상적인 속도를 기준으로 삼았어요. 지속해서 음악에서 원동력이 느껴질 수 있게 적당한 템포로 연주하려고 했거든요.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템포로 긴장감을 구현하는 부분이 꽤 중요해요.

악보를 기반으로 곡을 해석하는 과정을 짤막하게 설명해주세요.

우선 악보를 받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요. 이렇게 한번 훑으면 어느 부분이 아름다운지, 어느 부분에 어떤 감정이 필요한지 감이 와요. 곡 전체 윤곽을 잡은 후에 미시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요.

악보를 반복해서 보면 어떤 부분이 눈에 들어오나요?

아직도 악보에서 더 드러낼 것이 많다고 느껴요. 특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어요.

이를테면 악보에서 숨겨진 내성이나, 프레이징 마킹 등은 일부 간과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다른 부분에서 좋다면 작은 부분을 지나쳐도 좋은 연주가 나올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제 경우에는 악보 안에 작은 부분까지 살리는 과정에서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더 자주 다룬 곡일수록 해석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편인가요?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어떤 곡을 한번 배우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계속해서 연습하고 실전에 올리면서 더 좋은 해석으로 다가가니까요.

보통 처음 협주곡을 익힐 때는 얼마나 준비하나요?

새로 협주곡을 익힐 때 3~4달 준비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죠.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활동하면서 항상 그렇게 상황이 따라주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협주곡 레퍼토리를 늘릴 생각이에요. 만약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이미 해본 곡은 다시 준비하기에 수월하니까요.

악보는 여러 출판사를 비교해서 보는 편인가요? 아니면 한 에디션을 집중적으로 보나요?

쇼팽의 곡을 준비할 때는 헨레와 파데레프스키를 동시에 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신뢰성 있는 에디션을 구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해요. 이를테면 베토벤은 헨레, 모차르트는 바렌라이터, 라흐마니노프는 부지엔훅스를 선호하죠.

디지털 악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디지털 악보를 활용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에요. 특히 12인치 패드가 나와서 두 페이지를 한 번에 볼 수 있거든요. 페달을 밟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어서 종이 악보보다 편리한 점도 있어요.

연주에 작곡가의 생애를 담아내는 편인가요? 본인의 이야기를 입히는 편인가요?

기본적으로 악보에 적힌 걸 따르는 과정은 같지만, 그 안에서 굳이 작곡가의 생애를 그려내지 않고 저만의 풍경이나 이야기를 투영할 때가 많아요. 반면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경우에는 작곡가의 인생을 담아내려 했어요. 워낙 베토벤이 어려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라 작곡가의 색깔이 곡에 많이 묻어나거든요.

베토벤 후기 소나타는 초·중기와 달리 레퍼런스 음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후기 소나타 해석하실 때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처음엔 유명 연주를 참고하려 했어요. 중기 소나타까지는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풀어갈 수 있겠구나’하는 연주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후기는 아무리 잘 친 연주를 듣고 있어도 왠지 나는 다르게 해석을 해야할 것만 같았어요.

많은 피아니스트가 저마다 예술성을 지니고 베토벤 후기 소나타를 연주했지만,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구축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악보에 집중했어요. 아직 더 그려내야 할 것이 많지만 나름대로 풀어가고 있어요.

악보에 지시어가 명확한 편이 좋은가요?

네, 명확한 편이 좋아요. 다만 지시어가 많을수록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어요. 특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이 그랬어요. 왜 여기서 테누트가 쓰이고, 또 여기선 리타르단도가 갑자기 나오는지 처음엔 의문을 품었죠. 어떻게 보면 마킹이 없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지만,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분명 있어요.

의문가는 마킹이 나올 때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작곡가의 지시어니까 최대한 수용을 해야죠. 해당 지시에 친근해질 때까지 여러 방법을 갈구했어요. 답답하면서도 계속해서 맴도는 과정이긴 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면 갑자기 왜 이 자리에 이런 지시가 쓰였는지 확 깨닫게 되더라고요.

오는 〈The Piano Room〉에서 바흐, 베토벤, 리스트, 슈만을 차례로 다루십니다. 특별히 이렇게 프로그램을 구상한 이유가 있나요?

이번 리사이틀은 비교적 작은 공연장에서 열려요. 그래서 관객과 더욱 소통이 잘 되는 음악으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공연 프로그램 대부분 제가 오랜 시간 좋아하고 아끼던 곡들이죠. 제게도 친근한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과 교감하기에도 더 수월할 것 같아요.

리사이틀을 앞둔 소감을 짤막하게 말씀해주세요.

여느 공연을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대감과 긴장감이 공존하고 있어요. 이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더 다채롭게 그려낼지 떠올리고 있어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려요.

피아니스트로서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꾸준히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길 희망해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즐기듯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꿈꾸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껴요.

피아니스트 이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