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처음에 음악을 어떻게 시작했나요?

5살부터 동네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어요. 전공이 아닌 취미 수준에서 하루에 30분씩 배웠죠. 이렇게 지내다가 중학교 때 아마추어 유스 오케스트라에 입단했어요. 당시에 퍼스트 바이올린을 맡으면서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멜로디를 연주할 기회가 자주 생겼어요.

정말로 아름다운 음악이면서도 멜로디는 간단하게 구성되었죠. 막연하게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동기가 생겼어요.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 / 에스트로 제공

작곡은 독학으로 시작한 건가요?

시작은 독학으로 했죠. 모차르트, 하이든의 악보를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써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작곡법 책을 찾아보면서 혼자서 고민했죠.

어떤 계기로 작곡을 전공으로 결정하셨어요?

제가 혼자서 작곡한 곡을 오케스트라 단장님과 음악감독님께 보여드렸어요. 그분들께서 전문가를 만나보는 편이 좋겠다고 권유하셨어요.

박정선 교수님께서 제가 음악을 전공으로 삼기를 권했죠. 제가 하던 작곡은 혼자 계속하게 해주시고, 대위법, 화성학과 같은 기초 이론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셨어요.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일이니까, 이때부터 작곡을 전공으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지휘는 언제 시작하신 겁니까?

작곡과 비슷한 시기에요.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모습이 어린 제 눈에는 멋지게 다가왔어요. 그의 지시를 따라서 합주를 하고, 이를 통해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쾌감에 매료되었죠. 그래서 나도 지휘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지휘와 작곡을 겸하고 계십니다. 어떤 모습의 음악인이 되길 바라나요?

음악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변치 않은 꿈이 있어요. 베토벤과 카라얀의 모습이죠.

우선 작곡가로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베토벤이에요. 전통과 규범을 깨뜨리면서 새롭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한 점을 본받고 싶어요. 지휘자로는 카라얀처럼 오케스트라로 최상의 소리를 빚어내는 게 목표에요. 즉 작곡가로서는 저 자신이 담기게 곡을 만들고, 지휘자로서는 원 작곡가가 드러나도록 음악을 하고 싶어요.

지휘를 겸했기 때문에 작곡에서 유리한 점이 있죠?

작곡가가 2분음표를 길이로 어떤 악기 소리를 듣고 싶다고 가정해봐요. 오케스트라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작곡가는 2분음표를 그대로 쓰겠죠. 본인의 머릿속에서 듣는 것만 기록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실제 연주로 2분음표의 음가를 들으려면, 악보에는 조금 더 길게 써야만 그렇게 들려요.

지휘를 경험한 작곡가는 오케스트라의 특성과 심리를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때도 더 쉽게 상상하고 구현해낼 수 있기도 하죠. 작곡가는 그저 소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심리까지도 창작 과정에 포함을 시켜야 해요.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지휘자용 악보 / 최재혁 제공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서 곡을 써도 실제로 연주에서 밸런스 문제가 생길 때는 어떻게 대처합니까?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문제는 주로 젊은 작곡가의 작품에서 생기는 오류에요. 인정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원숙한 프로가 돼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문제겠지만, 경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이죠.

작곡가를 위해서 ‘리딩’이라는 실연 리허설을 해주는 악단도 있어요. 리딩의 목표는 작곡가의 곡을 초연 전에 수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리딩 리허설을 하지 않는 악단도 많아요.

공연 직전에 오류를 발견하면 주로 어떻게 합니까?

작곡가가 혼자 간직해야 해요. 이미 악보가 다 만들어지고 공연을 앞둔 상황에서 악단에 혼란을 주면 곤란하거든요. 악보에 적힌 것들이 작곡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믿을 때야 비로소 오케스트라는 진심으로 연주해요.

이번에 실수한 부분을 기억해서 다음에 더 잘 쓰면 돼요. 어떻게 보면 오류가 창작의 동기가 되기도 하죠.

이미 발표한 곡을 시간이 지나서 수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선호하시나요?

다시 곡을 수정해서 재발표하는 작곡가도 많아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바로잡는 일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죠.

제 경우에는 작곡 시점의 음악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좋은 음악이든 나쁜 음악이든 당시의 내가 담겨 있죠. 현재에 와서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발표한 곡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데 더 힘을 내려고 하죠.

작곡을 하실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뉴욕에는 미술을 즐길 곳이 많아요.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무명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죠. 또한,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큰 전시회를 여는 곳도 많아요. 다양한 시각 예술에서 소리를 상상해낼 때가 많아요.

시각예술에서 창작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시각예술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 분위기를 그대로 곡에 담지는 않아요.

우리가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감상할 때를 떠올려봐요. 단순히 ‘별빛이 번지는 강가가 아름답다’라는 감상에 그치지 않을 거예요. 저마다 경험과 감각으로 고유의 감정을 끌어내겠죠. 저 역시 제가 시각예술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고민하죠. 왜 제게 이런 감정이 주어졌는지부터 해석하다보면 음악적 상상력과 접점이 점점 생겨요.

좋아하는 작가와 거기서 느껴지는 미학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전통적인 작가 중에선 마그리트를 좋아해요. 지금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인상적이고요. 시각적인 아름다움 속에 담긴 의미가 있고, 그걸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다채롭게 수용되는 작품을 좋아해요.

요즘은 추함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요. 제 음악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려서 입체적인 미학을 담고자 하죠.

공연통계를 살펴보면 미국은 현대 음악 레퍼토리 비중이 꽤 큰 편입니다. 실제로 분위기는 어떤가요?

미국은 개방적이면서도 한편으로 폐쇄적인 면이 있어요. 미국 현대음악 씬에서는 미국 작곡가의 작품을 위주로 연주해요. 또한, 미국 대중들은 미국인 현대 작곡가가 쓰는 미니멀리즘, 팝, 네오 클래시즘이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해요. 반면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 작곡가에 대해선 잘 몰라요.

유럽은 미국보다 더 열린 편인가요?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미국보다는 유럽이 더 열린 분위기였어요.

페테르 외트뵈시의 ‘오르간, 해먼드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중 우주론(2017)’는 스위스에서 세계 초연했어요. 매진 공연이었지만 곡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가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마칠 때까지 많은 관객들이 객석을 지켰어요.

어느 레퍼토리든 연주회 관람이 일상화가 된 사람들이죠. 취향에 맞든 안 맞든 새로운 곡을 접하겠다는 자세가 있을뿐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은 자연스럽게 의사를 표하기도 하고요.

현대음악을 연주하려는 음악가도 유럽에 많은 편인가요?

한국과 비교하면 전문적으로 배출하는 인력이 많은 편이죠. 왜냐하면 유럽 음악대학 중에는 현대음악을 다루는 학과가 개설된 곳들이 있어요. 이런 점을 비롯해서 현대음악이 창작되고 수용되는 생태계가 더 건강하게 자리잡혔어요.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 / 에스트로 제공

앞세대와 비교해서 작품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있나요?

현재 작품에서 강조하고 싶다기보다는, 앞으로 하고 싶은 걸 말씀드릴께요.

헬무트 라헨만이 소음과 음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작곡가의 세계에서의 일이거든요. 대부분의 음악계서는 아직도 소음과 음의 소리를 구분해요. 그런 구분을 할 필요가 없어요. 소음이 들어가면서 음악적 색깔이 입혀지거든요.

특히 화음과 소음이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어우러졌을 때 만들어내는 새로운 소리는, 드뷔시가 전통을 깨고 만들어낸 음색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정음과 소음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정음과 소음의 가치는 동등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직은 정음이 소음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다장조 화음과 백색소음이 들려주는 화음은 모두가 아름다운 기능을 지니고 있어요. 두 소리에 대한 인식은 익숙함과 낯섦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죠.

과거의 작곡가는 오로지 실연을 목적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요즘은 음원 프로듀싱까지 고려하는 작곡가도 많은 편인데, 어떤 편인가요?

우선은 실황만 생각하고 있어요. 전자음악을 쓰거나 컴퓨터로 믹스해서 출시하면 제가 상상한 소리와 가깝게 나올진 몰라도, 현장에서만 직접 느낄 수 있는 전율, 쾌감이 담기진 않거든요. 더불어 제가 쓴 작품을 다른 연주자가 구현하는 과정도 재밌어요.

악보를 수기로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기로 기록하는 편이 프로그램보다 편한 점이 있나요?

모차르트 따라해볼 때는 프로그램으로 작곡해봤어요. 딱 조성음악까지는 괜찮았어요.

현대음악은 프로그램으로 표기하기 쉽지 않은 지점이 있어요. 포토샵으로 일일이 표시하기보다는 손으로 바로 써버리는 게 빠르죠.

수기로 악보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음악적으로 유리한 점은 있나요?

컴퓨터로 작곡하면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싶어져요. 지금까지 내가 뭘 썼는지 실질적인 소리로 확인하는 거죠. 내면의 귀로 들어야할 것을 기계음이 대체를 하니까, 음악적 상상력은 점차 희석이 되는 거죠. 이를테면 가상이 현실을 지배해버리는 것과 비슷해요.

반면 종이로 작곡하면 내면에 귀에 의존해서 곡을 써나갈 수밖에 없어요. 이런 과정을 거칠수록 거시적으로 음악을 접근할 수 있어요. 결국 내가 쓰고 있는 소리가 어떤지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공개된 자필 악보를 보면 깨끗한 편입니다. 머릿속으로 완전히 구상한 다음에 작곡하나요?

물론 모차르트처럼 머릿속에 있는 걸 한번에 쓱 쓰는 타입은 아니에요. 다만 작곡할 때 악보에 펜으로 쓰기 때문에 수정할 수 없어요. 연필을 쓰면 어떤 음을 써서 틀리더라도 다시 지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잖아요.

펜을 쓰면 머릿속으로 완벽에 가깝게 구상을 한 뒤에 악보에 옮겨 적죠. 한음을 쓸 때도 도샾일지 레샾일지, 혹은 2분음표일지 4분음표일지 명확하게 결정이 난 다음에 진행을 할 수 있어요. 긴장과 집중력을 작업 내내 유지할 수 있는 거죠.

작곡가 최재혁의 악보 / 최재혁 제공

어떤 작품은 실험에만 그치고, 어떤 작품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실험을 목적으로만 한 작품은 파격만 말하고 있잖아요. 반면 실험적인 옷을 입더라도 곡의 메시지가 명확한 작품이 있죠. 이런 작품에서는 보편적인 아름다움부터 신선한 감정까지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담아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작품에 새로운 감정을 담아내는 곡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고, 그런 곡을 쓸 수 있다면 전통으로 이어지겠죠.

지난 메뉴인 콩쿠르에서 10대 초반의 참가자가 최재혁 작곡가의 ‘Self In Mind’를 연주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추상적인 표현력까지 구사해서 놀랍던데, 작곡가로서 어디까지 조언을 해주셨나요?

제 작품을 초연하는 자리니까 아이들에게 곡을 직접 설명해주고 싶었죠. 그렇지만 콩쿠르의 공정성을 이유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요. 다만 기술적인 부분에 한해서 이메일로 질의응답을 받았어요. 아쉽게도 이메일을 보낸 애들은 파이널에 올라가지 못했어요.

저 역시도 연주를 듣고는 깜짝 놀랐어요. 정말 꼬마들이 곡을 이해하고 연주하는지, 아니면 선생님이 해석해준 걸 본따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주만 보자면 제가 상상한 것을 훨씬 넘어섰거든요. 천재들을 목격한 자리였어요.

‘Self In Mind’ 시리즈는 ‘Self Portrait’ 시리즈의 연장선 성격인가요?

우선 ‘Self Portrait’ 시리즈는 제가 어떤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지 일종의 탐구 성격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반면 ‘Self In Mind’ 시리즈는 악기에 대한 초상이라 할 수 있어요. 독주 악기만 쓰고 있으며, 그 악기를 바라보는 제 시각이 담겨 있죠.

‘Self In Mind III’는 악보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언제 초연하나요?

11월 12일에 ‘Self In Mind III’를 초연해요. 아쉽지만 이번 곡을 발표하는 자리에 작곡가인 저는 없어요. 같은 시기에 제네바 콩쿠르에 초청을 받아서 참석해요.

올해 제네바 콩쿠르는 피아노와 클라리넷 부문을 다뤄요. 바로 클라리넷 결선무대에서 참가자들이 전통 레퍼토리와 함께 제 작품인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3번’을 연주해요.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내년 상반기에 한국에서 지휘 무대를 갖습니다. 한 시향과 일정과 프로그램을 조율 중이에요. 또한, 5월 중순에 스위스 제네바 빅토리아홀에서 제네바 콩쿠르 역대 수정자와 함께 공연해요. 이날은 작곡가와 지휘자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에요.

6월 말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앙상블 앵 테르콩탕포렝(The Ensemble intercontemporain)’이 제 앙상블 곡을 세계 초연할 거에요. 또한, 바이올리스트 김시우 씨가 제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촉해서 내년 중에 쓸 계획에 있어요.

2020/2021년 시즌에 클라리넷 협주곡을 한국 초연할 기회가 있을 예정이에요. 또한 ‘앙상블 앵 테르콩탕포렝’와 ‘제롬 꽁떼(Jérôme Comte)’가 클라리넷 협주곡을 앙상블 버전으로 세계 초연할 예정이에요.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