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3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시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언제부터 피아노를 전공으로 삼았나요?

8살 때 선화 콩쿠르에 입상한 후 특전으로 선화영재아카데미에 입학했어요. 여기서 이양숙 원장님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공부했죠. 14살에 모스크바로 건너와 학교에서 피아노 공부를 이어가고 있어요.

물론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도 계속해서 연주해요. 전공으로 택한 피아노만큼 시간을 쏟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바이올린 연습도 여건이 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있어요.

Q. 바이올린 연습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피아노 커리큘럼에 몰입하면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시간이 늘 부족해요. 또한, 피아노 연주회를 준비하거나 콩쿠르에 참가할 때는 바이올린을 놓을 수밖에 없어요.

평소에 잠을 줄이더라도 2시간 정도는 바이올린에 투자해요. 이렇게 주어진 시간을 발전적으로 활용한다면 언젠가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Q. 바이올린을 켜는 경험이 피아노 연주에 도움이 되나요?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은 음정을 직접 잡고 선율을 만드는 악기잖아요. 바이올린 소리 하나하나에 세심한 노력을 하니까 피아노 연주에서도 같은 자세로 임하게 되거든요.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음에서 음으로 넘어갈 때 더 자연스럽게 선율이 그려지도록 몇 번이고 주의를 기울여서 접근해요.

Q.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악보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는 같아요. 그렇지만 두 악기의 성향에 따라 소리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다르죠.

피아노는 건반 88개를 활용할 만큼 넓은 음역을 지니고,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화려해요. 반면 바이올린은 현 4개를 활용해서 비브라토를 비롯해 피아노에서 구사할 수 없는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차이가 제게는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Q. 바이올린을 다루는 피아니스트로서 실내악에서 유리한 점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바이올린의 시각에서 피아노 연주를 검토할 수 있어요. 두 악기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피아노가 배려해줄 수 있는 거죠.

실내악에서는 같은 감정선을 따라서 좋은 화음을 낼 수 있게 신경을 써요. 공연 전에 현악기 연주자와 소통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죠. 이렇게 악기끼리 함께 호흡하며 좋은 소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정말로 즐겁죠.

피아니스트 이혁(하마마쓰 콩쿠르 3차 예선 실내악) ⓒ Hamamatsu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Q.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현악기 파트와 호흡이 더 잘 맞나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현악기 파트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죠. 기본적으로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실내악과 마찬가지로 좋은 앙상블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요.

Q. 지휘자를 꿈꾼다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가요?

지휘자가 되겠단 꿈도 간직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때가 된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에요. 여러 악기를 이끌어서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Q. 동생(이효)도 음악을 전공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두 형제가 자주 연주하나요?

가끔 연습실에서 동생과 함께 연주하곤 해요. 동생 역시 피아노와 바이올린 둘 다 연주하지만, 아직 12살이라서 공식 무대에 함께 서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언젠가 동생과 듀오 공연을 하고 싶어요.

Q. 동생에게 직접 연주를 가르쳐줄 때도 있나요?

우리 형제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주고받아요. 서로의 연주를 듣고서 느낀 그대로 말해주는 거죠. 이 과정에서 제게 많은 도움이 돼요.

간혹 동생이 제가 과거에 고민했던 지점에서 어려워하고 있다면, 당시 제 경험을 살려서 동생에게 팁을 주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죠. 또한,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제 연주를 들어왔어요. 동생이 제 연주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해줘요.

Q. 러시아에서 언제까지 공부할 예정인가요?

지난 2016년부터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5년제라서 2021년에 졸업할 예정이었죠. 그렇지만 작년에 콩쿠르를 비롯한 이어지는 연주회 일정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현재 1년 기한으로 휴학한 상태라서 아마 졸업은 2022년으로 미뤄질 것 같아요.

Q.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는 다른 학생의 수업에 참관할 수 있죠?

콘서바토리에서 교수님이 개인 지도를 할 때 다른 학생이 지켜볼 수 있어요. 다음 차례 학생이 일찍 오거나, 교수님 사정으로 앞 차례 학생 지도가 길어진 경우에 자연스레 참관이 이뤄지죠.

저도 수업이 끝나면 다음 학생이 배우는 과정을 볼 때가 있어요. 이럴 때마다 마스터 클래스와 같은 분위기로 수업이 진행되곤 해요.

Q. 현지 생활하면서 러시아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나요?

모스크바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러시아 정서가 있어요. 또한, 러시아 현지에서 수준 높은 연주를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볼쇼이 홀에서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 학생증을 보여주면 표를 안 사고 입장할 수 있어요. 여기서 러시아 레퍼토리 작품을 감상할 때가 많죠. 제가 공부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다양한 장르로 감상하면서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요. 이 분위기에 더 몰입해서 공부하면 러시아 작곡가 고유의 음악 문법을 파악할 수 있어요.

Q. 흔히 러시아 피아니스트에게서 박력 넘치는 연주를 떠올리잖아요. 실제로 곡을 익히는 과정에서 그런 면이 요구되나요?

유명 러시아 피아니스트 중에 체구가 큰 분이 많아서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볼로도스나 마추예프 같은 피아니스트는 힘이 넘치게 치는 게 몸에 맞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박력 넘치는 건은 아니에요.

독일식 고전과 낭만하고 비교해서 러시아 음악은 서정성이 강하고 독특한 애환이 있어요. 급변하는 시대에 맞섬과 동시에 광활한 자연 속에서 살아온 러시아인 특유의 정서가 음악에 잘 담긴 거죠. 이러한 선율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스케일이 확장되는 순간이 있어요. 이럴 때는 힘차고 정열적인 표현이 필요하긴 하죠.

Q.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는 전달력에 신경을 쓰는 편이죠?

오케스트라가 아무리 소리를 작게 내려고 해도 결국 뭉쳐지면 소리가 꽤 커요. 그 소리를 뚫고서 피아노 연주를 펼치려면 음량을 키울 필요는 있어요. 그렇지만 무작정 건반을 강하게 때리면 소리가 망가져요. 몸을 요령껏 쓰면서 건반을 깊게 눌러야죠. 전달과 표현에 관해서는 무대에서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어요.

Q. 성장기가 늦게 온 편으로 알고 있습니다. 뒤늦게 몸이 커지면서 연주에 어려운 점을 겪었나요?

성장기가 늦게 온 편은 맞아요.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손가락과 팔은 긴 편이었어요. 다른 연주자와 비교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죠.

다만 운지법을 고치느라 애를 먹긴 했어요. 사정상 음악을 잠시 멈춘 적이 있거든요. 선생님 없이 혼자서 피아노를 치면서 저도 모르게 잘못된 습관이 굳어졌던 거죠.

Q. 손가락을 벌리면 몇 도까지 짚나요?

아주 편하게는 아니지만, 11도 정도는 무리 없이 짚을 수 있어요.

Q. 선호하는 피아노 브랜드가 있나요?

레퍼토리에 따라서 달라요. 개인적으로 밝고 가벼운 소리를 표현할 때는 야마하의 음색과 잘 맞아요. 반면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같은 작품에는 스타인웨이의 울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가와이는 두 피아노의 중간 음색을 지녔어요.

피아노 브랜드마다 특성은 어차피 기호의 문제에요. 어느 피아노가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서 연주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끌어올리기에 무리가 없어요.

Q. 새 피아노를 선호하는 편인가요?

완전 새 피아노는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한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갓 나온 피아노로 연주한 적이 있어요. 건반이 너무 무거워서 5분만 연주해도 힘들었죠.

오래된 피아노보다 최신 피아노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몇 번 거쳐 적당히 길들어진 피아노가 연주하기에 더 수월해요.

Q. 비슷한 연령대 연주자와 비교해서 레퍼토리가 넓은 편입니다. 의도적으로 다양하게 소화하는 편인가요?

피아노 레퍼토리는 방대할 뿐만 아니라 시대별로 그 특성을 파악해서 공부할 거리가 많아요. 일부러 레퍼토리를 늘리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에 충실히 임해요. 제 경우에 배움에 목이 마른 시기를 거쳤으니까, 새로운 곡을 익히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거든요.

또한, 저 스스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발굴해서 청중에게 들려주는 일을 좋아해요. 말하자면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매개자가 되는 거니까요.

Q. 현대곡을 연주할 때는 접근 방식이 달라지나요?

현대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혼자서 구축할 때가 많아요. 특히 음반이나 작곡가에 관한 연구가 없는 경우에는 배경 지식을 활용해서 풀어가기도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고전 레퍼토리보다는 제 직감과 감성을 기반으로 판타지를 끌어내는 지점이 많죠.

Q. 곡을 해석하는 과정을 짤막하게 소개해주세요.

세상엔 무수한 곡이 있을뿐더러 작곡가마다 개성과 사상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곡을 처음 접하면 작곡가의 언어가 무엇이고, 작품이 어떤 분위기에서 탄생했는지 많은 정보를 찾아요.

전체적인 곡의 윤곽이 잡힌 다음에는 어떻게 관객에게 들려줄지 고민해요. 프레이즈 하나하나를 직접 쳐보면서 감을 잡기도 하고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점점 명확해지죠.

Q. 체스, 프로그램 개발 등 주로 논리적 사고에 관한 취미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품을 탐구할 때도 분석적으로 파고드는 편입니까?

피아니스트는 작곡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창작물을 연주하잖아요. 악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분석력이 필요하긴 하죠. 그렇지만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사전에 구축한 해석만으로 연주를 펼치지는 않아요. 오히려 무대에서는 해석의 틀을 통해서 걸러진 감정을 온몸으로 풀어내는 타입에 가깝죠.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서 직감적이고 본능적인 연주를 하는 편이에요.

Q. 작곡이나 편곡에도 관심이 있나요?

어렸을 적에는 습작으로 곡을 만들었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노트에 옮겨 적곤 했죠. 지금은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훗날에 작곡을 더 체계적으로 배워서 저만의 사상과 감정을 담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편곡에도 관심이 있어요. 특히 오케스트라를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을 연주하기를 즐기는데, 저 역시도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Q.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우라서 주변에서 견제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나요?

제가 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묵묵히 나아가려고 해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내면의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 더 집중하죠. 일시적으로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릴 수 있어도 결국, 세상은 제가 노력한 만큼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믿어요.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3위를 한 계기로 주어진 일정이 있어요. 이렇게 연주 활동을 하면서 다른 콩쿠르 참가도 함께 고려하고 있어요.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상황이라서 올해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콩쿠르 참가는 여건과 상황이 맞아야 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도전을 즐기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이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