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더 스트링싀(thestrings.kr)에 실림

 

현재 어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세요?

1781년산 ‘로렌조 스토리오니(Lorenzo Storioni)’로 연주해요. 지난 2015년부터 ‘독일음활재단(Deutsche Stiftung Musikleben)’에서 대여받아 연주하고 있어요.

이 악기는 어떤 음향적 특색을 지녔나요?

화려한 음색을 지닌 악기는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어둡고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바이올린이죠. 때로는 중저음에서 비올라와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해요. 이런 면을 특별하다 여기고, 정말로 애정을 쏟아 연주하고 있어요.

바이올린 현은 어떻게 구성해서 쓰나요?

특별한 제품을 구해서 쓰진 않아요. 주로 토마스틱 비전 스트링을 쓰고, E 현은 렌즈너 26~7을 상황에 따라 바꿔가며 연주해요. 렌즈너 E 현은 기본에 충실하고 안정감이 있어요.

주로 어떤 활로 연주를 하나요? 여러 제품을 쓰신다면 그 이유를 함께 말씀해주세요.

주로 쓰는 활은 ‘메하(Maire)’와 ‘보린(Voirin)’이에요. 메하로 바이올린을 켜면 소리가 크게 나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포함해 굵고 단단한 소리가 필요할 때는 메하를 쓰죠. 반면 보린은 깨끗하고 세밀한 표현을 할 때 유리한 활이에요.

사실 악기보다도 활을 알맞게 쓰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어요. 곡에 따라서 악기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활은 제가 원하는 소리에 맞게 쓸 수 있잖아요.

한 공연에 여러 레퍼토리가 섞이면 활도 바꿔서 연주하나요?

같은 공연이라도 곡에 따라서 활을 바꿔쓰는 편이에요. 물론 활마다 현을 누를 때부터 긋는 속도까지 필요한 감각이 다 다르지만, 이러한 차이는 곡에 맞춰서 바로바로 조정할 수 있어요.

오케스트라 반주가 무거운 곡을 연주할 때도 여유가 느껴집니다. 큰 홀에서 협연할 때도 전달력보다 표현력에 더 신경을 쓰나요?

바이올린을 쥐어짠다고 해도 소리가 제대로 커지는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울림이 생기죠. 활로 현을 강하게 누르면서 소리를 키우는 것보다 ‘배음(Overtone)’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을 선택할 때 항상 소리를 바르게 끌어낼 수 있는지 신경을 써요.

방금 답변하신 내용은 유럽 스타일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두 나라에서 모두 공부하셨는데, 실제로 분위기나 교육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확실히 분위기 차이가 있어요. 지역에 따라 오케스트라 색깔이 다르고, 이상적인 소리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기도 해요. 이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음악을 두고 다양한 면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20살에 독일에 왔어요. 이제 독일에서 생활한 지도 8년이 다 되어가네요. 성인이 된 이후에 다른 문화권을 접했기 때문에 음악적 차이를 자각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미국에서 독일에 건너왔을 때 음악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있나요?

급하게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지나온 삶의 궤적이 음악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지냈고,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양쪽 문화권에 영향을 다 받은 거죠.

독일 생활은 어떤 면에서 음악에 도움이 되나요?

언어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죠. 독일어와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음악적인 연결고리가 생겨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첫 제자로 유명하지만, 두 분의 연주 스타일은 꽤 다릅니다. 주로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해도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각자가 생각과 스타일에서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음악적인 목소리도 다르게 나올 거예요.

제가 정경화 선생님께 영향을 받은 건 완벽을 추구하는 자세와 뼈를 깎는 노력이에요. 7년 동안 선생님과 지내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삶에서 배운 점이 많아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제 안의 곳곳에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 있어요.

스승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집요하게 파고드는 태도가 훌륭하다”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가요?

정경화 선생님 댁에서 함께 지내면서 공부한 기간이 있어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레슨을 받고, 이 레슨이 끝나면 저는 따로 개인 연습을 했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연습할 때 선생님께서 옆방에 계셨잖아요. 선생님이 제 연주를 들으실 텐데 몰입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웃음)

하루 연습은 어느 정도 하나요?

어렸을 적에는 매일 7~8시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지를 않아요. 연주도 결국 신체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장기간 연습하는 건 무리가 간다고 생각해요.

제 몸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서 연습 시간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해요.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따라 연습량도 변하기도 하고요.

콩쿠르를 비롯해 독주 무대로 알려졌지만, 실내악도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어떤 편성을 더 선호하시나요?

리사이틀,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을 골고루 하길 원해요. 음악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또한, 리사이틀 무대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실내악과 같은 자세로 임해요. 제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잘 받쳐줘야 좋은 음악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모든 음악은 크게 보면 실내악과 같은 시각이 필요하다고 여겨요.

편성에 따라서 연주 스타일이 달라지나요?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크면 단원이 80명 이상으로 이뤄지잖아요. 만약 협주곡 무대에서 실내악과 같은 보잉을 구사한다면 소리가 온전히 전달되기가 어렵겠죠.

실내악은 4~5명과 함께 연주하기 때문에 다소 연극적인 요소도 있어요. 또한, 볼륨이나 프로젝션에서 자유로운 대신에 더 세심하게 듣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 ⓒ KimYoungBum

공연장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점검하나요?

바이올린을 쭉 그어보면 단번에 음향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요. 건조한 홀보다는 울림이 많은 편을 선호하지만, 너무 과하게 윙윙거리면 좋지 않아요. 또한, 내가 낸 소리가 다시 반사되어 내 귀에 들어와야 연주하기에 수월해요.

콘서트홀의 울림에 따라서 연주가 달라지나요?

공연장마다 잔향 차이를 고려해서 연주하지만, 그렇다고 제 연주가 크게 변하지는 않아요. 다만 유럽에 있는 교회 중에는 울림이 엄청난 곳이 있어요. 이런 공간에서 연주할 때면 계속해서 울림에 주의해야 해요.

곡을 해석하실 때 악보에 집중하는 편인가요?

악보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곡을 준비할 때 다른 연주를 직접 참고하지는 않아요. 그저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해서 제 목소리로 솔직하게 나오도록 집중할 뿐이에요. 다만 작품이 나온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는 공부하죠.

작품이 나온 시기를 기준으로 공부하나요?

네, 작곡가가 해당 작품을 발표한 시기에 어떤 작품을 썼는지 찾아보죠. 오는 5월에 제가 대구시향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잖아요. 이 곡의 작품번호(Opus.)가 61번이에요. 이 곡을 전후로 만들어진 베토벤의 작품을 보는 거죠. 그래서 바이올린 작품에 국한하지 않고 작곡가의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공부해요.

원전 연주까진 아니더라도 그 시대 분위기를 최대한 내려고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현대 바이올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표현하는 걸 선호하나요?

어차피 현악기는 과거와 비교해서 너무나 달라졌어요. 연주법 자체 발전도 있지만, 악기 자체가 진화해서 옛 시대 소리를 그대로 모사할 수가 없어요. 물론 시대악기를 쓰거나 특정한 효과를 내면 그 시대 분위기를 흉내를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소리 자체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제게 주어진 악기를 바르게 활용해서 작곡가의 언어를 전달하고 싶어요.

시벨리우스를 비롯해 20세기 초 음악을 다룬 무대가 유명합니다. 선호하는 레퍼토리는 무엇인가요?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18번이 되어버렸어요. 아무래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을 해서 이 곡을 연주할 기회가 많아졌죠. (웃음)

실제로 특정 작품이나 작곡가만을 선호하진 않고요,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싶죠. 앞으로 남은 주요 일정을 살펴보면 베토벤, 시벨리우스, 비발디 등 시대 구분 없이 골고루 다룰 예정이에요.

콩쿠르에 참여할 당시에는 대회에 맞춰서 연주했나요? 아니면 평소와 똑같이 무대에 올랐나요?

특별히 콩쿠르를 위해서 연주하지는 않았어요. 오로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에만 집중했죠. 그렇기에 저에게 있어 콩쿠르 결과보다도 그 준비과정이 훨씬 의미가 있었어요. 즉 콩쿠르는 저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시도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참가 당시에도 내 안에서 이뤄지는 음악과의 처절한 싸움에 집중했어요. 심사위원의 구미를 맞추거나 결과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죠. 그렇지만 제 음악을 좋게 감상해주신 분이 많은 덕분에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어요.

상반된 분위기의 곡을 연이어 연주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작곡의 작품 세계, 더 세부적으로는 곡에 몰입하면 감정적으로 힘들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쇼스타코비치 작품을 다룰 때면 어두운 시기를 지나가는 기분이 들곤 하거든요. 이런 작품을 하다가 밝은 작품을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반대의 경우는 정말 힘들죠.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당연한 부분이라 여기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작품 세계에 적응하도록 경험을 계속해서 쌓아야죠.

다른 예술 장르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즐겨 들어요.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즐겨 찾곤 하죠. 그렇지만 다른 예술 분야보다도 제 삶 자체, 즉 일상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아요.

현재 뮌헨에서 강 근처에 있는 집에 살고 있어요. 강가를 산책할 때면 정말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까?

진실한 음악인이 되고 싶어요. 저 자신 과의 대화를 비롯해서 음악, 동료, 청중 관계에서 모두 마찬가지에요. 그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음악을 다루고 싶어요. 이런 울림을 통해서 청중의 공감을 끌어내고,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어요.

앞으로 남은 주요 활동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세요.

오는 5월 24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시향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해요. 같은 달 27일에 더하우스콘서트에서 다시 인사드려요.

6월에 파로스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가해요. 특히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비안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어서 기대하고 있어요. 그 후에 중국에서 협주가 있고, 7월에 일본에서 정명훈 지휘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크라와 두 차례 협연할 예정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