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떤 분위기였나요?

부모님 모두 피아니스트시고, 삼촌은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어요. 생의 첫 기억부터 집안에 음악이 가득했거든요. 부모님께서는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셨어요. 실내악 리허설, 학생 레슨, 다양한 녹음 등 음악적인 분위기가 집안에서 이어졌어요.

Q. 부모님께서 피아니스트의 삶을 권유했나요?

부모님을 따라 계단을 오르듯 나아가면 전문 음악인이 될 거라 믿었어요. 제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었죠. 우리 가족의 삶은 음악과 연결되어 있었고, 제 인생의 유일한 방향이라고 여겼죠.

참고로 저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바로 아버지셨어요. 18살 때까지는 이렇게 피아노를 배웠어요.

Q. 많은 피아니스트 중에서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까?

단 하나의 이름을 꼽는 건 참 어렵네요. 고민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안드레아 쉬프, 마르타 아르헤리치, 반 클라이번, 메나헴 프레슬러, 라두 루프 등이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음악인은 피아니스트가 아니에요.

Q. 피아니스트가 아니라면 다른 악기 연주자입니까?

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에요. 지난 2012년에 베르비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그의 무대를 감상했어요. 이날 연주에 최면에 걸린 듯 홀려버렸죠. 제가 살면서 들어본 가장 감동적인 표현이었어요. 정말로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풀어냈죠.

스티븐 이설리스는 주로 영국과 독일에서 활동하죠. 운 좋게도 저 역시 그 지역을 오가며 실내악 레슨을 진행해요. 그의 공연을 볼 기회가 많아서 다행이에요.

Q. 당신에게 피아노는 무엇입니까? 세 단어로 말씀해주세요.

세상. 무한, 다른 차원.

Q.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삶이 역동적이고 흥미롭게 흘러가지만, 상당히 힘든 과정이기도 하죠.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많은 여행길이 이어져요. 낯선 곳에 가면 하루, 혹은 그 이상을 혼자 지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멋진 음악인들과 계속해서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아요. 말하자면 음악을 통해 전 세계에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Q. 음악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때로는 어려운 시기에 있거나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받아요. 제 연주를 듣고서 희망을 얻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앞으로도 음악으로 사람들의 그늘진 마음에 빛을 줄 수 있기를 바라죠. 또한, 제 공연에 와주신 분들께서 저마다의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셨으면 해요.

Q. 수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하셨습니다. 참가 당시에는 음악적인 접근이 달라지나요?

학생 시절에는 콩쿠르에 참가를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제 음악적 신념에 따라 충실히 연주했을 뿐, 대회를 위해서 특별히 다른 접근을 한 것은 아니에요. 콩쿠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젊은 음악가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어요.

Q. 콩쿠르 참가로 인해서 활동 기회를 잡으신 편인가요?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무수한 관심을 받아요. 다양한 리사이틀 기회가 주어지고,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협연 제의가 오죠. 그렇지만 이 기회를 살려서 자신을 증명하는 건 오히려 콩쿠르 경쟁보다 어려워요. 정말로 소수만이 살아남죠.

저는 콩쿠르 참가했을 당시에도 콘서트 연주자로서 경력을 계속해서 쌓고 있었어요. 콘서트 일정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자, 콩쿠르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 ⓒ Marco Borggreve

Q. 대형 콘서트홀에서 공연할 적에 전달력과 표현력 중에 어디에 더 신경을 씁니까?

둘 다 중요하고, 어느 것 하나 희생할 수 없어요.

Q. 특별히 추구하는 음색이 있습니까?

정말로 음색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특정한 음색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피아노에서 다양한 음색을 구현하는 걸 원하죠. 또한, 타악기 성질인 피아노로 노래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때로는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해요. 이를테면 음표나 코드를 반복하지 않고 크레센도를 표현하는 것처럼요. 내적 울림으로 그렇게 들리도록 음악적 환상을 끌어내는 거죠.

Q. 원하는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무엇인 중요합니까?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먼 좌석에서 내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주하기도 하죠. 여기에 부드러운 음색을 낼 수 있도록 고민을 해요. 때로는 무대 뒤편까지 가능한 가장 조용하게 ‘피아니시시시모(PPPP)’를 전달하고자 하죠.

Q. 피아노가 지닌 음향적 잠재력을 다 끌어낸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안타깝게도 피아노가 지닌 음향적 잠재력이 극히 낮아서 경험한 적은 있어요…… 어떻게 해도 소리가 더 나아질 방법이 없었죠……

Q. 다가오는 한국 리사이틀의 주제는 “Beyond Fantasies”입니다. 프로그램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누구나 빠져드는 판타지가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작곡가마다 판타지가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베토벤, 스크랴빈, 슈만, 쇼팽, 모차르트의 환상곡을 다뤄요.

공연 프로그램인 환상곡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는 재미도 있어요. 이를테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의 1악장과 슈만 환상곡의 3악장은 유사성이 있어요. 또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스크랴빈의 환상 소나타는 ‘달빛’이란 이미지가 겹쳐요. 베토벤의 소나타는 (작곡가 의도와 관계없이) 후대에 달빛이라 불리게 되었고, 스크랴빈은 휴가 중에 해안가의 달에서 영감을 받아 환상 소나타를 지었죠.

Q. 음악적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작곡가와 잇닿아 있다는 느낌을 선호해요. 작곡 당시의 심리나 시대상에 대해서 공부를 하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영감을 얻거나 창조적인 접근법을 고안해내기도 해요. 또한, 음악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잖아요. 제 경험을 토대로 연주하면서 해석이 자연스럽게 구축되기도 하죠.

Q. 기존 레퍼런스 연주를 참고하시는 편입니까? 악보를 기반으로 혼자서 구축해나가는 편입니까?

악보를 연구를 중요시해요. 작곡가의 텍스트 가운데 세부적인 지점에서도 해석의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다만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선에서 다른 피아니스트의 앨범을 듣죠. 제 해석과정과 감상을 즐기는 건 별개니까요.

Q. 지난 레퍼토리에서 특별한 작품은 무엇입니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에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이 곡을 연주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가 2천만이 넘었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여러 곳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물론 제가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실내악 작품 가운데서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에요. 저와 실내악을 즐기는 동료 음악가들이 있어요. 공식적으로 팀을 구성하거나 정기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무대에서 함께 연주해요. 우리의 레퍼토리 중에서 0순위는 언제나 송어였어요.

Q. 내년에 새로 발매할 앨범이 있습니까?

올해 네덜란드 레이블 “Channel Classics“와 계약했어요. 계약 후 첫 앨범 [Four Fantasies]를 가을에 발매했어요. 레코딩 엔지니어(Jared Sacks)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작업을 해주셨어요. 같은 레이블과 함께 2019년에 총 3차례 앨범을 발매할 거예요.

우선 솔로 레퍼토리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여기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함께 수록한 앨범을 내요. 마지막으로 비올리스트 다나 젬트솝과 듀오 앨범을 계획하고 있어요.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내년 상반기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져요. 또한, 보스턴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라질에서 순회공연을 열어요. 유럽에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함께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 무대를 갖고, 실내악과 솔로를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에요.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