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이상권 – 다가오는 <2018 마스터피스 – 황병기>에서 지휘를 맡으셨습니다. 이번 공연을 앞둔 소감은 어떻습니까?

원영석 – 지난 2008년에 황병기 예술감독님께서 저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부지휘자로 불러주셨습니다. 그 시절에 함께한 일들이 생각납니다. 또한,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열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상권 –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함께 음악을 한 입장에서 ‘황병기의 음악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원영석 – 제가 감히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 세계를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인 황병기의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모습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 재직 당시의 활동에 대해서는 구분해서 소개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이상권 – 음악인 황병기 선생님은 어떠하셨나요?

원영석 – 황병기 선생님은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자신만의 신념이 뚜렷한 분이셨습니다. 우리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연주법을 비롯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셨죠. 한 마디로 가야금 연주의 진일보를 이끌고 한국음악의 지평을 넓히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권 – 그렇다면 예술감독으로서의 황병기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원영석 – 황병기 선생님이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는 기획에 집중하셨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브랜드를 개발하신 셈이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획 연주를 추진하시면서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셨습니다.

이상권 – 황병기 선생님께서 기획한 공연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원영석 – ‘뛰다 튀다 타다’란 작품이 있습니다. 재미에 초점을 맞춘 공연이죠. 기획 당시에 황병기 선생님께서 다른 요소보다 요즘 젊은이의 트랜드에 맞도록 준비하자고 하셨습니다.

이상권 – 지휘자님께서는 국악과 클래식을 모두 공부하신 입장인데, 두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원영석 – 두 음악은 태생이 다릅니다. 음악적인 재료가 달랐고, 소리를 만드는 구성에서 차이가 났다고 볼 수 있죠. 두 음악이 전혀 별개의 예술은 아니지만, 확립 과정이 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권 – 현재 국악을 배우는 학생들은 서양음악도 함께 배우나요?

원영석 – 지금 한국에서 국악을 전공하면 양쪽 음악을 다 배웁니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서양음악의 침범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좋게 생각하면 서양음악의 실용적인 부분을 잘 흡수할 기회기도 하죠.

이상권 – 서양음악에서 좋은 것을 배우되 우리 음악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원영석 – 이를테면 “향당교주”는 중국에서 들여온 ‘당악’과 우리 전통의 ‘향악’을 조화롭게 구성한 음악입니다. 예전부터 우리 음악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발전해왔습니다. 단, 말씀하신 대로 우리 음악의 정체성을 지켜야죠.

이상권 – 국악관현악은 대형 콘서트홀에서 음량 문제가 지적받고 있습니다. 대처법은 있나요?

원영석 – 우선 자연적인 음향을 살리면서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 편성을 크게 가져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산을 비롯한 현실 문제로 쉽지는 않습니다. 더불어 국악기도 서양악기가 발전한 것처럼 콘서트홀에 맞게 계속해서 계량되어야죠.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음향 장비를 사용해서 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나는 음향과 증폭된 소리가 잘 어우러지도록 음향과 공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이상권 – 작곡가에게 현장의 의견을 제시하시는 편입니까?

원영석 – 많이 제시합니다.

이상권 – 주로 어떤 부분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편인가요?

원영석 – 우선 음표를 그대로 따라 읽으면서 소리가 구조적으로 잘 맞는지 분석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한 방향을 생각하죠. 그런데 작곡가가 상상한 소리를 실제로 구현할 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상권 – 작곡가가 머릿속으로 어떤 소리를 그려도 실제로 연주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원영석 – 그렇습니다. 작곡가가 모든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건 아니니까요. 개별 악기의 연주법에 대한 어려움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이상권 – 작품 해석에 관한 문제는 그다음에 이뤄지겠군요.

원영석 – 네, 구조적인 분석과 실제 연주로 구현되는지를 점검한 후에 해석에 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겠죠.

이상권 – 현대 국악 악보를 살펴보면서 재밌는 걸 발견한 적 있습니다. 오선지에 작품을 표기하지만, 서양에 없는 현을 뜯는 위치에 관한 특수기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존 오선지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국악기에 맞는 악보의 개량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원영석 – 무엇보다 악보는 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연주자가 악보를 보고 온전히 소리를 내기 어렵다면 문제가 되겠죠. 현대 국악에서는 오선보와 정간보를 병행해서 쓰는데, 두 악보마다 장단이 있어서 고민이 있습니다.

이상권 – 서양식 오선보를 사용했을 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원영석 – 사실 국악기는 정간보에 맞게 되어 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진 것이죠. 예를 들자면 대금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자연스럽게 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궁상각치우 5음계는 자연스럽게 잘 납니다. 반면 합주를 위해서는 오선보가 유리한 면도 있습니다.

이상권 – 국악 악보에서도 스타카토나 트레몰로 같은 개념은 서양과 같지만, 그걸 소리로 구현하는 과정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원영석 – 아무래도 같은 스타카토를 해도 악기 특성상 구현하는 기교가 다릅니다. 이런 점들은 더 세밀하게 표기하는 방식이 나오긴 해야 합니다.

이상권 – 다른 국악기는 동아시아 지역 악기와 유사한데 거문고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거문고가 한국적인 소리를 내는데 주요한 악기로 볼 수 있나요?

원영석 – 거문고는 다루기 까다롭고 답답함이 매력인 악기죠. 줄을 막대기로 뜯기 때문에 음색이나 기법에서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현하는 소리는 다른 동양권 음악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거문고를 잘 활용해서 곡을 쓴다면 그만큼 우리 음악의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겁니다.

이상권 – 거문고처럼 한국적인 특색이 강한 악기가 또 있을까요?

원영석 – 아쟁은 한국적인 색이 강합니다. 엎어 놓고 활로 연주하는 악기는 다른 지역에서 이제 잘 쓰이질 않습니다. 아쟁 역시 잘 활용하면 우리 소리의 맛을 잘 살릴 수 있습니다.

이상권 – 요즘도 작곡 활동을 하시나요?

원영석 – 작곡에 생각은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지금은 지휘가 우선이니까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 작품을 직접 지휘해서 소개하는 무대를 꿈꾸고는 있습니다. 천천히 여건이 될 때마다 조금씩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권 – 음악인으로서 특별히 바라는 점은 있나요?

원영석 – 아무래도 이화여대에서 국악 지휘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여성 지휘자의 육성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성 인권이 성장하면서 여성 지휘자도 활발히 나올 여건은 되었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여성 지휘자가 많이 보이질 않습니다. 남녀의 선을 가르지 않고 좋은 지휘자가 현장에 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국악 지휘자 원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