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과거에 마테오 고프릴러의 첼로로 연주하셨죠? 지난 <CELLO PROJECT Nostalgie>에서 같은 악기로 무대에 오르셨나요?

이번 무대에서는 프레데릭 쇼르디에(Frédéric Chaudiere)가 만든 첼로로 연주했어요.

마테오 고프릴러는 영국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후원해준 악기였죠. 재학 중에 쓰다가 졸업과 동시에 반납했습니다.

프레데릭 쇼르디에는 현역 제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새 악기를 쓰신 건가요?

2008년에 만든 악기지만, 제가 첫 주인은 아닙니다.

쇼르디에가 첼리스트 나탈리아 구트만(Natalia Gutman) 선생님을 위해 몬타냐나(Domenico Montagnana, 1686-1750)의 첼로를 본떠서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재 구트만 선생님을 거쳐 알렉산더 보야르스키(Alexander Boyarsky) 선생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데, 제가 잠시 빌려 쓰고 있죠.

유명 첼리스트의 손을 거쳤으니 검증된 악기겠네요. 따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나요?

악기가 바뀌면서 소리를 틔우는 과정과 악기 몸체에 적응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소리를 내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현대 악기지만 고 악기 못지않게 소리가 깊고 색깔 역시 다채롭게 잘 나와요. 다만 악기의 몸체가 꽤 커서 적응에 어려운 점은 있었죠. 제 체형이 큰 편이 아니거든요. 특히 현과 현 사이와 더불어 음과 음 사이의 간격도 넓어서, 제 왼손이 익숙해지기까지 꽤 고생했습니다.

첼리스트 조은 제공

고 악기와 현대 악기를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흔히 고 악기와 현대 악기의 특성을 일괄적으로 분류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악기마다 다 달라요. 오래된 악기와 요즘 악기의 차이를 논하기보다는, 제가 사용한 두 악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테오 고프릴러는 18세기에 제작한 고 악기입니다. 명성에 걸맞게 소리가 잡혔죠. 고유의 따뜻한 음색을 바탕으로 처음 켤 때부터 다양한 색깔이 잘 나왔습니다.

아쉬운 점은 소리를 틔우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사용하기 직전까지 연주 없이 14년 동안 보관되었거든요. 여기에 내구성 문제로 장력이 높은 현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쇼르디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악기여서 튼튼합니다. 현 선택을 비롯해 물리적으로 안정성이 높죠. 더불어 악기가 원체 지닌 음량이 좋아서 큰 홀에서도 연주에 무리가 없습니다.

소리가 크게 나는 악기를 선호하나요?

깊은 소리를 내면서 음색도 다양하고 전달력마저 충분한 악기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서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악기를 구하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연주자 취향과 목적에 따라 먼저 고려할 부분이 생기죠.

저는 큰 홀에서도 뒤편까지 소리가 잘 뻗는 악기가 좋습니다. 현재는 솔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니까요. 훗날에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 더욱 중점을 둔 연주활동을 하게 된다면 음색을 더 고려해서 악기를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소리의 전달력 차이 난다면 연주법 역시 달라지죠?

소리 전달력이 좋은 악기는 활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소리가 잘 뻗으니까 음색에 초점을 맞춰서 연주하면 됩니다.

솔리스트 가운데서도 전달력보다 음색에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악기를 선택하는 분도 계셔요. 이 경우에는 저와 반대로 음색을 덜 신경 쓰는 대신에 전달력에 중점을 두며 연주를 하겠죠.

첼로에 현을 섞어 쓰시는데, 어떻게 조합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A와 D 현은 로스탄보(Rostanvo) 제품을 씁니다. 로스탄보가 작은 신생회사 제품이라 한국에 잘 알려지진 않았어요. 이 현은 스테판 포포프(Stefan Popov) 선생님의 추천으로 사용했습니다.

음역 특성상 가장 높은 현인 A 현이나 가장 낮은 C 현 보다는, 중간 현(D, G)이 소리 전달에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로스탄보 D 현은 밝고 강하지만 A 현이 과하게 두드러지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은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해요.

G와 C 현은 스피로코레(Spirocore) 텅스텐을 사용합니다. 아마도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현일 거예요. 매우 안정적이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써오고 있어요.

첼로의 소리를 잘 나오기 위해선 어떻게 연주해야 합니까?

단순히 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단연 테크닉이 필요하죠.

기본적으로 내 몸으로 자연스럽게 활을 써야 합니다. 왼손도 불필요하게 힘을 주어 꽉꽉 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무게를 현 위로 툭 떨어뜨리듯이 연주해야 합니다.

첼리스트 구트만 & 조은 / 조은 인스타그램

첼리스트 구트만 선생을 시사하셨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구트만 선생님은 정말 닮고 싶은 첼리스트예요. 그만큼 음악 내적으로도 배울 것이 많지만, 외적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구트만 선생님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했습니다. 이 클래스에서 미샤 마이스키, 다비드 게링가스, 재클린 뒤프레 등 전설적인 첼리스트와 함께 공부했습니다. 더불어 피아니스트 리히터, 지휘자 아바도 등의 함께 연주하셨습니다. 이때 일화와 경험을 레슨 도중에 자주 말씀해주셔요. 제게는 또 다른 공부가 되는 셈이죠.

구트만 선생처럼 대가로 불리는 연주자는 어떤 면이 다른가요?

흔히 천부적인 재능은 지닌 사람은 쉽게 무언가를 이룬다고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구트만 선생님은 연주할 모든 곡의 악보를 머릿속에 완전히 넣어두고 계십니다. 소나타를 공부할 때는 피아노 악보의 스포르찬도(Sf)와 악센트의 차이까지, 콘체르토를 공부할 때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마다 내는 음 하나하나가 무슨 악상으로 어느 하모니를 연주한다는 것까지 다 통달하고 계시니까요.

천재도 학구적인 자세가 있어야 대가가 될 수 있겠구나, 깨달았죠.

구트만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고 계신가요?

첼로의 대가로 불리는 연주자를 살펴보면 남성이 많아요. 구트만 선생님처럼 여성이 그 위치에 가는 경우가 흔하지 않죠.

첼로는 남성의 악기로 불릴 정도로 여성에겐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연주 자체에 많은 힘을 필요하므로 체격에 많은 영향을 받거든요. 팔을 휘두르는 것부터 차이가 나죠.

신체적 차이를 넘어서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구트만 선생님께서 개척한 부분을 저 역시 이어가고 싶습니다.

솔리스트 활동과 동시에 출강도 하십니다. 교육자 활동이 연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가 있나요?

문제 풀이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시험에서 정답을 맞힌 문제일지라도 옆 친구에게 설명하다 보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막연하게 알아낸 것과 깊이 이해한 것의 차이죠.

자신이 온전히 체화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제대로 가르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학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저 역시 다시금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국내와 해외의 음악 교육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국내 음악교육 시스템도 잘 구축되었죠. 교육의 질 자체가 크게 차이 나진 않습니다. 다만 환경적으로 다른 점은 분명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입시부터 콩쿠르까지 눈앞에 놓인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힘을 쏟습니다. 이 과정에서 음악인으로서 고민해야 할 부분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죠.

제가 경험한 외국 학생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늦게 음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대학 진학 후에 전공을 바꾸는 일도 흔해요. 심지어 석사 과정으로 음악을 시작하는 경우도 봤어요.

어릴 적에 연주력을 끌어 올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음악을 왜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좋겠죠.

브리튼 곡을 자주 연주하십니다. 현재 거주하시는 영국의 영향이죠?

브리튼은 좋아하는 작곡가이자 학교 선배입니다. (웃음)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그만큼 영국에서 브리튼은 연주할 기회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브리튼 곡 제의가 종종 들어와요.

브리튼의 작품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음악 내적으로 배워가는 부분도 있고,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적으로도 공감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들을 때와 연주할 때 선호하는 작곡가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슈만은 들을 때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하지만 연주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Schumann Fantasiestücke Op.73 (Eun Cho & Youngsung Park)

연주 활동에 비해 온라인에 음원이나 영상이 적은 이유가 있나요?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네요.

어떻게 보면 제 연주를 가장 먼저 듣는 관객은 저 자신인 셈이죠. 저를 이해시키는 연주를 해야 다른 이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관을 짤막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 경우에는, 외적으로 드러내려고 힘쓰며 연주하기보다, 그저 음악이 지닌 힘과 제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서 전달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제가 바라는 것은, 제 연주회에 오시는 관객들이 저마다 나름의 감상을 해주셨으면 해요. 제가 같은 곡을 다음날 연이어 공연할 때가 있잖아요. 같은 곡이지만 두 번째 들었을 때 객석에서 다르게 감상하실 수도 있거든요. 이렇게 관객의 몫을 남겨둔 채 제 연주에 진정성을 담는다면 무대와 객석의 교감도 더욱 풍성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첼리스트 조은 제공

앞으로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한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변함없이 교육과 연주 활동을 하면서 보낼 예정입니다.

올해 하반기에 영국에서 크고 작은 연주가 있어요. 독주회가 대부분이고 챔버뮤직(앙상블)도 합니다.

내년 1월 말에 첼로 프로젝트 공연을 위해 잠깐 귀국합니다. 더 멋진 모습으로 한국 관객들을 찾아뵙겠습니다.

첼리스트 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