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현재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시잖아요. 이 바이올린은 음향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녔나요?

전반적으로 소리는 밝은 편인데, G와 D 현의 울림이 깊어요. 말하자면 소리의 다양한 면이 공존하는 악기죠. 각 현에 따라 내는 음색이 뚜렷할뿐더러 전체 균형도 잘 잡혔어요.

‘일본음악재단(Nippon Music Foundation)’에서 바이올린을 후원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대여조건은 어떤가요?

일본음악재단은 좋은 악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어요. 많은 연주자가 이 재단으로부터 후원받은 악기로 활동하고 있죠. 재단에서는 이렇게 후원한 악기의 상태를 보존하는 일도 중요해서, 대여 과정에서 연주자를 통제하는 부분이 있기는 있어요. 계약 기간도 딱 1년으로 정해놓고, 매년 평가해서 연장하는 식이죠.

일본음악재단에서 매년 계약을 개신을 할 때 주로 어떤 부분을 확인합니까? 심사할 때 부담되시나요?

매년 떨리는 순간이 있어요. (웃음)

갱신일이 다가오면 활동 내역, 활동 계획 등을 담아서 재단에 지원서를 보내요. 이 과정을 친 후에 기존 대여자의 계약을 연장할지 해지할지를 결정하죠.

과거에 함부르크장학재단에서 대여받은 ‘카밀리(Camillus Camilli)’는 꽤 오래 쓰셨습니다. 원하는 기간만큼 연장해서 쓸 수 있었나요?

대여 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악기를 써본 적은 없어요. 다만 카밀리는 만 30세까지 쓸 수 있어서 여유가 있었죠.

대여 기간이 만 30세까지인데, 중간에 악기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밀리로 정말 편하게 연주했어요. 오랫동안 악기에 아쉬움 없이 썼죠. 다만 제가 연주자로 성장하면서 볼륨이나 프로젝션에 필요성을 더 느끼긴 했어요. 그렇다고 이 악기가 부족하단 건 아니에요. 악기마다 지닌 특성이 다르니까요.

카밀라 다음으로 ‘엑스 크로알(Ex-Croall)’로 불리는 168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하셨습니다. 두 악기의 명성이나 가격은 꽤 차이 나는데, 실제로 연주해본 입장에선 어떤가요?

악기 제작자의 명성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명제작자의 모든 악기가 다 좋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엑스 크로알은 스트라디바리우스지만 연주하기 힘든 악기였어요. 몇 년을 연주해도 편히 쓰지 못할 만큼 예민했고, 음향적으로도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죠.

제 기준에서 이렇다는 말이고요, 모든 악기는 연주자와 궁합이 중요해요. 저는 카밀리를 잘 쓰고 재단에 반납했지만, 저 다음으로 이 바이올린을 쓴 연주자는 꽤 고생했다고 해요.

엑스 크로알에서 현재 쓰시는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바꾼 이유는 궁합이 안 맞아서인가요?

사건도 있었어요. 엑스 크로알을 대여해준 은행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반납해야만 했거든요. 때마침 지금 제가 쓰는 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후원받을 기회가 생겼죠.

지금 쓰는 바이올린은 ‘배음(overtone)’이 풍부하고 울림 또한 깊어서 만족해요. 소리가 끝까지 뻗을 정도로 탄탄해요. 여기에 소리의 질감마저 고급스럽게 잘 나와요.

현은 주로 어떤 제품을 씁니까?

주로 도미넌트를 쓰고 있어요. 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자체의 음향적 성격이 강해서 도미넌트와 궁합이 잘 맞아요. 다만 E 현만 렌즈너 제품을 써요.

원래 제가 현에 예민한 편이 아니기도 했어요. 여러 제품을 실험적으로 교체하며 써오질 않았죠. 익숙한 현을 제외하고는 정보가 빠삭한 편은 아니에요.

현재 연주하실 때 어떤 활을 쓰시나요?

지금 쓰는 악기가 예전 활과 궁합이 맞질 않았어요. 악기를 바꾸면서 활도 새로 찾아야 했죠.

바이올린 활 제작자한테 가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어요. 10~12개 활을 놓고 하나씩 직접 써보면서 제게 맞는 걸 골랐죠. 이 활은 가격도 적당하고 연주할 때 원하는 방향으로 소리를 낼 수 있어요.

프로그램이나 편성에 따라 여러 활을 쓰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현재 연주용 활은 하나만 쓰시고 계시는가요?

어렸을 때부터 활을 하나만 써왔기에 주로 범용성이 높은 활을 선호했어요. 여러 활을 소장하면서 연주할 여유가 없었죠. 특색이 강한 활이면 여러 개 소장하는 것도 이해는 가요.

한번은 바이올린 제작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시몬 보우(Pierre Simon’s Bow)’로 연주해본 적이 있어요. 그 활로 바이올린을 켜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은 소리가 나는 거예요. 딱 솔로 연주자에게 맞는 활이었죠.

그날 악기와 활의 궁합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다시금 느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표현력과 전달력 가운데 어디에 비중을 더 두시면서 연주하나요?

프로젝션을 따로 떼어놓고 고민하진 않지만, 소리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공연장에서 소리가 잘 들릴뿐더러 거친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이런 부분도 의도하며 소리를 내는 건가요?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런 쪽으로 신경 쓰는 게 맞아요. 표현하자면 활의 숨을 내 호흡처럼 연주하는 걸 선호해요. 이렇게 연주하면서 어떻게 소리로 공간을 채울지 고민하죠.

사실 제가 볼륨이 큰 연주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타고난 힘도 좋고, 소리를 크게 내는 주법을 구사하는 연주자도 많아요. 잘 들리는 건 중요하지만 꼭 절대 음량이 커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공연장에 도착하면 무엇부터 체크합니까?

사실 제가 체크한다고 공연장이 달라지진 않잖아요. (웃음)

연주자는 공연장에 적응해야죠. 다행히 한국은 예당을 비롯해 좋은 홀들이 마련되어 있고, 주로 거기서 연주하니까 큰 어려움은 없어요.

공연장 상태에 적응력을 높이는 팁이 있나요?

연습을 왕왕 울리는 공연장보다 ‘방과 같은 환경(room acoustics)’에서 많이 하죠. 이렇게 하면 잔향이 짧고 소리가 건조하게 들리는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어요.

곡을 해석하실 때 원전주의자에 가까운 느낌을 받습니다. 작곡 당시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는 편입니까? 아니면 화려하게 개성을 드러내는 연주를 선호합니까?

제 연주는 화려한 편이 아니라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부족한 점일 수도 있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하죠. 다만 제가 특정 작곡가나 시대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니까, 그 시대 분위기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건 쉽지 않죠. 그런데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또 이 틀에서 나만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죠.

특히 바흐 연주하실 때 비브라토 같은 연주법 등에서도 그 시대 분위기를 많이 살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런 방향으로 고민하신 게 맞나요?

바흐 시대에 비브라토란 연주법이 없던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시대 모든 곡이 다 비브라토 없이 연주되진 않았겠죠. 다만 지금과는 다르게 쓰였을 거예요.

제가 바흐 곡을 연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시대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고민하면서 필요한 부분에만 비브라토를 했죠.

곡을 해석하실 때 악보에 집중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문헌 정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까?

굳이 이야기하자면 악보에 더 집중하는 편이죠. 제가 잘 모르는 작곡가를 연구할 때나, 혹은 잘 아는 작곡가라도 다른 접근을 하기 위해서 문헌 정보를 참고하긴 해요. 요즘은 자서전을 비롯해 워낙 공개된 자료들도 많잖아요.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하려는 강박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그런 부분들 더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최근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악장이 되셨잖아요. 현재 수습 기간인가요?

네, 수습 기간이에요. 지난 1월부터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솔로와 오케스트라 활동을 병행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아직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지 3달 조금 지났네요. 계속 공부하고 또 적응하고 있어요.

이미 솔리스트로 자리를 잡으셨는데,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음악적 시야를 넓히고 싶었어요.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접할 수 있는 작곡가의 작품은 굉장히 좁아요. 주로 바이올린 소나타나 협주곡 몇 개에 지나지 않잖아요. 일부분이 아닌 전체 작품을 고르게 다루고 싶었죠.

오케스트라를 병행하면 솔로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잃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솔로 활동을 할 때도 오케스트라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아무래도 오케스트라 스케줄이 빡빡하게 있는 데다가, 일주일가량 쉬는 날이 생겨도 매번 독주하기에는 체력적으로 쉽지 않아요. 오케스트라를 하기 전보다는 솔로 활동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말씀하신 대로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솔로 활동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어요. 며칠 전에 브람스 소나타를 집에서 연습했어요. 신기하게 피아노 파트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들리더군요. 속으로 ‘아, 이거는 클라리넷 라인일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놀랐죠. 많이 연주했던 곡이지만 새롭게 다가왔어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다른 각도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는 걸 느껴요.

최근에 실내악 활동까지 하십니다. 앞으로도 솔로, 실내악, 오케스트라까지 다 활동하실 계획인가요?

최근에 4중주 팀을 만들었어요. 멤버들이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리끼리 공부하면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 있어요.

저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하고 싶어요. 솔로뿐만 아니라 실내악과 오케스트라까지 계속해야죠.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면 물론 힘도 들고 어려운 점이 생기지만, 제가 원하는 길이기에 만족하고 있어요.

최근에 국내 전공자 사이에서 오케스트라에 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엑섭을 비롯해서 입단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었나요?

보통 오케스트라 입단은 3-4차 오디션을 진행해요. 서류와 예비심사를 거친 다음에 메인 오디션을 여러 번 치르는 거죠. 그렇지만 일괄적으로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오케스트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입단 오디션에서 요구하는 게 다 달라요. 엑섭 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를 평가하는 곳도 있고, 바흐의 솔로 곡을 요구하는 곳도 있어요.

레코딩 계획은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현대음악을 주제로 앨범이 없으신데, 앨범에 동시대 음악을 다룰 계획은 있으신가요?

요즘 앨범 내기가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웃음)

그냥 기회가 온다면 현대 음악도 도전해볼 생각은 있어요. 그렇지만 현대 음악 쪽은 제가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는 해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