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지안 왕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지안 왕의 첼로는 강하면서도 두꺼운 음색을 지녔어요. 또 섬세해야 할 부분에서는 굉장히 섬세한 소리가 나죠. 오래전부터 지안 왕이 연주한 앨범을 즐겨 들었고, 몇 년 전에 실내악 공연을 함께한 적도 있어요.

이번 공연은 첼로와 피아노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핵심적인 곡들로 구성했어요. 지안 왕과 함께 준비하면서 음악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Q. 이번 프로그램은 작곡가가 남긴 유일한 ‘첼로(혹은 첼로가 대체하는 악기) 소나타’형식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 곡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우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를 위한 소나타’는 첼리스트에게 도전적인 곡이에요. 6 현인 아르페지오로 연주할 목적으로 쓰인 곡인데, 4 현인 첼로로 음을 짚고 기교를 구사해야 하니까요.

쇼팽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첼로를 위한 소나타에서 피아노적인 관점이 많이 드러나죠.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니스트를 겸한 작곡가이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이 있어요. 다만 두 작곡가가 구사하는 피아노적인 어법에서 차이가 있죠.

Q.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곡가의 자필 악보를 참고하셨나요? 그렇다면 자필 악보에서 작곡가의 의도를 더 가까이 체감할 수 있나요?

온라인에 올라온 자필 악보는 다 봤죠.

매번 자필 악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자필 악보가 해석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Q. 슈베르트 자필 악보를 보면 수정한 흔적이나 특유의 필체가 보입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쇄본과 비교할 때 차이가 있었나요?

슈베르트 곡은 주로 ‘헬레(Henle)’판과 ‘베렌라이터(Bärenreiter)’판 악보를 비교해가며 봤어요. 이 인쇄본도 자필 악보를 기반으로 옮겼잖아요. 슈베르트가 바흐처럼 슬러나 핑거링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직접 제시한 프레이즈가 있어서 인쇄본과 자필 악보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요.

반면 쇼팽 같은 경우는 슬러가 일반적이지 않아요.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끊어가며 숨 쉰다고 해야 할까요. 쇼팽만의 프레이즈를 만든 거죠. 결국, 어떤 악보냐를 떠나서 작곡가의 어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해요.

Q.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를 다른 연주자와 연주하신 적이 있고, 반대로 지안 왕도 프로그램에 있는 곡을 다른 피아니스트와 공연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과거 연주를 참고하나요?

듀오의 경우 첫 리허설을 하면서 음악적인 작용과 반응이 완전히 바뀌죠. 정확히 예상하고 접근할 수가 없어요. 지안 왕도 자기만의 스타일은 유지하지만, 파트너인 피아니스트의 성향에 따라서 템포나 타이밍이 바뀌죠.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죠. 제가 음악적으로 준비했던 부분도 지안 왕과 함께 연습하는 과정에서 많이 달라졌어요.

Q. 두 분이 트리오로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서 듀오 공연을 준비할 때가 더 많은 의견이 오가나요?

그렇죠, 이번 듀오 공연에서 음악적으로 아이디어를 조율할 지점이 많았어요.

Q. 같은 세대와 듀오 무대를 오를 때와 비교해서, 이번 공연처럼 선배 연주자와 준비할 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경력과 나이보다는 개인에 달린 문제라 봐요. 두 연주자의 성격이 잘 맞아야 진행도 수월해요.

의견을 맞추는 과정도 연주자 성향에 따라서 좀 달라요. 어느 한 쪽이 요구하고 다른 쪽이 수용하면서 진행할 수도 있고, 아니면 둘의 의견이 부딪히는 과정에 합의할 수도 있고요. 여러 상황이 리허설 도중에 발생하죠. 같은 곡 안에서도 부분마다 상황이 바뀌기도 해요.

Sunwook Kim – Pianist
© Borggreve

Q. 음악적 아이디어를 조율할 때 이견이 생기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상대의 요구가 설득력 있으면 그대로 수용하지만, 의문이 생길 때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게 되죠. 서로 대화하면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간혹 힘들게 진행될 때도 있어요.

Q. 작곡가마다 악보에 지시한 사항이 다르잖아요. 듀오 공연을 준비하실 때는 악보의 텍스트가 명확한 편이 좋은가요?

오히려 그게 편하죠. 악보의 텍스트가 확실할수록, 음악적 아이디어를 빨리 합의할 수 있으니까요.

Q. 독주의 경우에 악보의 디테일 여부가 해석에 영향을 미치나요?

바흐의 작품은 지시사항이 적지만 해석이 다른 곡보다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죠, 반면 베토벤이 악보에 지시사항을 많이 넣었다고 해서 연주자가 그의 작품을 해석할 때 덜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요.

연주자에게 악보는 정말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너무 얽매이는 건 좋지 않아요.

Q. 지휘까지 전공하셨잖아요. 피아노 연주하실 때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를 예로 들어볼까요. 피아노 연주를 목적으로 지은 곡이지만, 피아노가 아닌 교향악적인 관점이 필요해요. 곡 전체를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반대로 쇼팽의 곡은 피아노적인 관점에서 곡을 이해해야죠. 이 경우에 지휘를 배우거나 교향악적인 이해가 높아졌다고 해서 확연히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Sunwook Kim – Pianist
© Marco Borggreve

Q. 지휘자의 진로를 두고 여러 발언을 하셨습니다. 어떤 말이 정확한 건가요?

매년 달라요. (웃음)

Q. 요즘도 지휘자의 길을 고민 중이신가요?

지휘자의 길도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죠. 지휘를 제대로 하려면 경험이 많이 쌓여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기회가 오면 거기에 맞게 진행해야죠.

Q.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도 지휘할 기회도 있으시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편할 수도 있어요. 지휘자를 거치지 않고 프레이즈, 템포, 아티큘레이션 등을 빠르게 조정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피아니스트 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지휘할 수 있죠.

Q.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독일 작곡가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시는데, 거주지의 문화적인 배경은 고려를 안 하는 편인가요?

독일로 거주지를 옮길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Q.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의 곡을 다룰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나요?

죽은 작곡가에게는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맨날 이런 곡들만 하다가 현역 작곡가의 작품을 할 때가 오면 직접 소통할 기회를 활용하죠. 궁금한 지점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질문해요.

Q. 작곡가와 연주자가 소통할 때 곡의 해석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어떤 작곡가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편을 선호해서 연주자에게 맡겨두는 부분이 많아요. 반면 어떤 작곡가는 자신의 곡은 꼭 이렇게 연주해달라고 당부하죠. 작곡가 스타일에 따라서 해석의 주체도 달라져요.

Q. 피아니스트에게 음색이 중요하잖아요. 어떤 음색을 추구하나요?

일단 사람이 본래 지닌 소리가 잘 바뀌지는 않아요. 곡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달리하긴 하지만요. 또 음색을 미시적으로 분할해서 다듬은 음색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를 선호해요.

어떤 음색을 추구한다기보다 내기 싫은 음색이 있죠.

Q. 피아니스트로서 피하고 싶은 소리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큰 코드를 칠 때 찍어 누르는 소리라든가, 쾅쾅 때리기만 하는 소리라든가, 나만 들리고 청중들은 안 들리는 작게 치는 소리는 지양해요.

Q. 공연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편입니다. 홀에 소리를 채우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가요?

어렸을 적에는 공연장 맨 끝까지 소리를 전달하려고 의식하며 연주했어요. 건반을 누를 때도 깊게 누르곤 했었죠. 요즘엔 손끝에서 음의 무게나 음색을 조절하는 게 전보다는 자연스러워졌어요.

Q. 간혹 공연장에서 피아노 소리가 아쉬운 날에도, 2부가 되면 소리가 갑자기 좋아지곤 했습니다. 연주하시면서 홀 적응을 어떻게 하시나요?

공연장 환경에 따라서 페달 사용을 조절할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피아노를 치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아요.

Q. 음악인으로서 바라는 모습은 있으신가요?

보름 정도 지나면 만 서른이 됩니다. 돌이켜보면 10대까지는 음악만 보고 살았고, 20대에는 음악 외적인 것에 호기심이 많이 생기기도 했어요. 재작년부터 다른 것들을 접어두고 음악에만 몰입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죠.

어렸을 적에는 레퍼토리를 늘리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제는 더 잘할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하려고요. 이렇게 하면 제 연주의 질도 계속해서 높아지겠죠.

피아니스트 김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