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두 눈을 감고 있으면 바이올린 소리가 촛불처럼 일렁인다. 비유하자면 몽당연필처럼 짧은 초일 것이다. 더 내려놓을 곳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주위를 밝히는 연주자의 삶.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손길.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는 감각적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렇지만 단순한 공감각적 상상이 아니다. 연주자가 오랜 수련으로 음악의 작은 틈새를 파고들 때 생기는 은유, 이것은 곧 관객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제 연주가 예술적인 신비로움을 지녔을 때 모두가 그 음악을 받아들이는 건 같을 겁니다. 개인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요.”

음악에서 신비로움을 찾아낸다는 말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정경화는 “어느 분야나 통달한 사람은 대단하다”며 “달인을 다룬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신비함을 느낀다”라고 쉽게 설명했다. “예술가라면 특히 자신의 길에 신비성을 느끼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길고 깊게 갈 수 있거든요.”

TIMF ⓒSihoonKim


스트라드와 과르네리

“작년엔 스트라디바리우스 ‘킹맥스(1702, the ‘King Maximilian Joseph, 1702)’를 썼습니다. 이 악기는 과르네리보다 사이즈가 작을뿐더러 ‘배음(overtone)’이 굉장히 좋습니다. 그렇지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가 날 만큼 예민해서 다루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죠.”

ⓒ Sim Juho

지난 3일에 열린 리사이틀에서 정경화는 킹맥스를 놓고 과르네리 ‘쿠벨릭(Ex-Kubelik, 1735)’으로 무대에 올랐다. 정경화는 “쿠벨릭은 1973년부터 함께한 악기”라며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시 쿠벨릭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정경화의 검지가 회복되었다는 신호다. “이제는 손가락에 힘이 더 붙어서 쿠벨릭으로 연주해도 괜찮습니다.”

이날 정경화는 고령이란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소 투박한 부분이 나오긴 했으나, 예전처럼 큰 그림을 그려내는 연주는 변함없었다. 이렇게 객석에서 과거 회귀적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쿠벨릭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쿠벨릭은 한 몸처럼 반응합니다. 원하는 소리를 직접 빚어낼 수 있어요.”

정경화는 과르네리보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더 먼저 만났다. 19세에 스트라디바리우스 ‘헤리슨(1693, Harrison)’으로 본격적인 연주자의 삶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24세에 과르네리의 중저음에 반해서 쿠벨릭으로 악기를 교체한다. 30대 중반에 과르네리 ‘로데(1734, Ex-Rode)’를 추가로 구해서 지금까지 과르네리 두 대로 활동을 계속해왔다. 정경화는 “오랫동안 과르네리와 손을 맞췄기 때문에 작년에 연주한 스트라드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과르네리와 스트라드는 소리의 색채 만드는 범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음정을 내는 과정에서부터 차이나죠.” 정경화는 두 바이올린의 음향적 특색에 대해서 비유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고음이 화려한 스트라드가 귀족적인 소리라면, 과르네리에는 서민적인 울림이 있습니다.”

활과 현

68년에 투어를 앞두고 활 끝이 부러졌습니다. 급하게 ‘자끄 프랑세(Jacques Francais)’ 가게에서 ‘아담(Jean Adam “Grand”)’이 만든 활을 샀습니다.”

아담은 정경화가 가장 즐겨 쓰는 활이다. 최근에 악기를 바꿨을 때도 이 활은 바꾸지 않았다. 정경화는 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쾌한 이야기를 건넸다. “대관령에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제 활을 연주해보곤 ‘제 바이올린에서 선생님의 소리가 나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바이올린으로 만드는 소리에서 활의 비중이 큽니다.”

“젊었을 적에는 제가 너무 예민해서 아담 활로만 연주했어요. 이제는 이것저것 써도 괜찮아요. 여러 활을 거쳤지만 주로 쓰는 건 그래도 아담과 ‘뚜흐트(Tourte)‘ 활입니다.”

한편 정경화는 주로 ‘피터인펠트 파이’ 현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단 E 현만 ‘골드브로컷의 26이나 27 게이지’를 쓴다.

테크닉과 음악성

“사실 테크닉은 젊은 세대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스포츠와 같이 후대로 갈수록 기술적인 완성도는 더 좋아지거든요.” 정경화는 바이올린 교육의 시대적 차이를 이어 설명했다. “요즘은 연주법에 관한 많은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운동신경이 좋고 신체적 균형이 잘 맞으면 테크닉 자체는 금방 터득합니다.”

정경화는 10대 바이올리니스트의 테크닉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렇지만 이른 시기에 너무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한다며 우려했다. “10살짜리가 콩쿠르에 나와서 바로크부터 20세기 음악까지 다 합니다.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이건 너무 빠릅니다.” 정경화는 “테크닉은 표현 수단이지 음악 그 자체가 아니다”라며 “음악은 기술이 아닌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줄리아드 재학 시절에 갈라미언 선생이 제게 준 곡목은 주로 바이올린 레퍼토리입니다. 당시에 소나타와 실내악도 별로 하지 않았어요. 주요 콘체르토 20개를 딱 마무리하고 바흐 무반주를 2주 동안 터득했죠. 이걸 못 박아두고 계속 돌리면서 음악적으로 성장했던 거죠.”

뮤직앤아트컴퍼니 제공

젊은 연주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경화는 “예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곡 하나를 수십 년 동안 연주해도 음악적인 신비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같은 곡을 연주해도 남들과 똑같이 할 수 없어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찾고 지혜롭게 나아가야 합니다.”

파트너 케빈 케너

지난 2011년 대관령음악제에서 정경화와 케빈 케너가 처음 만났다. 당시에 케빈 케너는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다. 정경화는 “내 귀로는 케빈 케너처럼 녹턴을 치는 사람을 처음 들었다”며 “그에게 듀오로 활동할 것을 권유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케빈 케너가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무엇보다 케빈 케너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듀오 활동을 진지하게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저를 존경한다면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정경화와 케빈 케너의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둘은 성격이 너무 달라요. 처음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었죠.”

Kyung Wha Chung & Kevin Kenner
ICA
Royal Festival Hall 2 Dec 2014

정경화는 “한동안 함께 활동할 피아니스트를 구하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함께 무대에 올랐던 피아니스트도 “핑계를 대고 피하는 눈치”였다. 당시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자 “다들 당신을 실망하게 할까 봐.”라고 답이 왔다.

“케빈 케너가 지메르만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인내를 갖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아직 내 귀에 들리는 소리처럼 자기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면서요. 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입니까. 케빈 케너의 말대로 이제는 호흡이 잘 맞습니다”

나를 위한 바이올린

1973년 4월 국민훈장수여

정경화는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더 자유롭게 경험을 쌓고 싶다”고 밝혔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수업을 못 듣게 했어요. 그 시간에 솔로 연습을 더 하라고 시킨 거죠.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단원부터 악장까지 다 경험해보고 싶죠.”

“젊었을 적엔 부모님을 위해, 나라를 위해서 연주했어요. 어떻게 나를 먼저 생각해요? 속으로 생각하더라도 말을 꺼내지도 못했죠. 지금은 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잖아요. 이만큼 내가 자유로운 거 아니에요?”

정경화가 자유로워진 모습은 대기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과거에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연습했다면, 이제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용히 기다린다. “손을 다쳐 바이올린을 만지지 못할 때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그만큼 내가 자유로워진 거죠.”

“예술인의 목표는 자기가 자유롭게 소화한 걸 다시 자연스럽게 나오게끔 하는 것이겠죠. 마냥 깨끗한 것만은 아닙니다. 감정 그대로 나와야 하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