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최근 활동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지난해 말에는 문화관광체육부가 후원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2016 서울국제뮤직페어(이하 뮤콘)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콘퍼런스를 비롯해 행사 진행을 맡았으며 직접 무대에 올라 연주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깁슨 아티스트로 선정되었습니다.

깁슨 공식 글로벌 엔도서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기타리스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깁슨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전자기타 대표 브랜드입니다. 더불어 기타 연주자의 최종 목적지로 여겨지곤 합니다. 깁슨 아티스트에는 지미페이지, 피트 타운센트, 닐숀, 돈 펠더, 게리 무어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주자가 있습니다. 깁슨 아티스트로서 한 식구가 되었다는 건 정말 영광이죠.

깁슨은 전자기타 회사로 출발해서 오늘날 2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많은 전자기타 회사가 다른 사업으로 시작해서 기타 제작을 시작한 것과 달리, 회사의 정체성이 기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타리스트에게 깁슨은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Gibson Artist Hong Kong press release / 김세황 제공

세션 연주자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아티스트 주도적인 입장에서 활동을 하셨는데요, 올해는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가요? 

올해 3월부터 스카치위스키 브랜드인 맥캘란의 광고모델로 활동했습니다. 광고음악으로 CJ E&M과 협업하여 D.C.T. (featuring Simon Phillips & Stu Hamm)를 발표했습니다. 4월에는 용산 미8군에서 개최하는 대표적인 한미축제인 ‘Hello, Mr.K’의 올해 행사에 사회자 겸 연주자로 참가하여 EDM 풍의 전자기타 공연을 펼쳤습니다.

5월 말에는 SM엔터테인먼트 ‘스테이션(디지탈 음원 공개 채널)’ 시즌 2에서 트렉스의 정모 님과 함께 전자기타 곡 Nostalgia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영상과 함께 감상하면 좋습니다. 더불어 상반기 내내 TV와 라디오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꾸준히 출연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 실용음악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대외 활동 못지않게 음악 교육에도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록의 거리’에 등재되셨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 20인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앞으로 해외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세계화가 되면서 아티스트로서 해외에 노출 기회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런 흐름 덕분에 제 음악을 전 세계 팬들이 감상할 수 있을뿐더러, 좋은 평가까지 받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올해 상반기가 뜻깊은 일들로 가득했듯이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하반기 활동에 대해 짤막하게 말씀드리자면, 국내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서 작품을 준비 중입니다.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 피부관리, 외국계 기업 대표님들과 교류 등 자기 개발 역시 소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톤 메이킹 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전자기타의 음색을 연구하는 일은 연주자의 아이덴티티 구축에 매우 중요합니다. 비비 킹,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디 반 알랜, 스티브 바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 기타리스트는 자기 색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제 기타 연주가 지닌 색을 표현하는데 몰두합니다.

20대 중반부터 BBC 수석 음향학자 믹 글로솝 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음향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롤랜드의 ‘보스 톤 센트럴’에 김세황의 전자기타 음색이 공식 등록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야마하뮤직 마스터 클래스에서 전자기타 톤 메이킹을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으며, 작년 뮤콘에서도 깁슨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김세황 기타는 이렇다.’ 한마디로 말씀하신다면요?

‘김세황의 기타는 우리네들의 일상과 함께 음악으로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연주 스타일은 유혹적이고요.

연주가 유혹적인 건 검증된 건가요?

수차례 검증 되었습니다. (웃음)

영화 OST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시고, 서울시향과 클래식 앨범도 내셨습니다. 기타리스트로서 다양한 시도를 할 적에 어떤 점을 중시합니까?

상황마다 다릅니다. 궁극적으로 아티스트로서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합니다. 목표가 명확하다면 청취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또 접근하는 부분에 ‘감’이 얼마나 특출한 것인지 등을 고민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전자기타로 클래식의 다채로운 스케일에 어떻게 적응하셨습니까?

무엇보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음악을 클래식으로 시작했습니다. 4살 때부터 클래식 기타,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일이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고향으로 돌아왔단 느낌으로 임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곡인 사계를 녹음하셨습니다. 다른 시대의 클래식 곡도 연주하신 적 있으신가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예술의 전당에서 얀산시립합창단과 협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무대 위에서 클래식 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장르에 구분 없이 좋은 작품이라면 항상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자 기타리스트로서 클래식과 교류가 잦은 편이군요.

저도 어렸을 적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유명 공연장에서 협연할 거라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얄 필하로닉 오케스트라(100주년 세계순회 연주회), 이무지치(60주년 순회연주회) 등 좋은 기회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오케스트라에서 기회가 되면 협연하자고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처음으로 랙 이펙터(Rack Effects)를 사용한 연주자로 알고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해오셨는데, 과거와 현재 음악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예전에는 제 음악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에 추구했던 연주는 기타리스트가 주도적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이었죠. 이 과정에서 카리스마 있도록 날카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하는 걸 원했고, 여기에 걸맞는 소리를 찾아서 연구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록의 거리’ 등재, 미국 MI 음악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 SM엔터테이먼트와 교류를 비롯해 케이팝 활동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케이팝이나 EDM에서 기타 연주가 보조가 아닌 주 역할을 맡는 스타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원하는 소리를 만드는 과정에 단순히 물리적인 연주만으로 부족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편집을 비롯해 해당 장르의 여러 면을 기타 연주에 접목하는 스타일을 연구 중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속해서 대중과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기타리스트로서 새 시대에 나아갈 수 있는 연주를 모색하는 것이죠.

공연하실 적에 음향과 퍼포먼스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십니까?

아무래도 주로 연주자이기에 음향에 좀 더 신경을 쓰긴 하죠. 하지만 퍼포먼스 역시 간과하지 않으려고 꽤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제 역할이 달라집니다. 무대 위에 연주자로서 오를 때도 있지만, 음악 감독, 무대 진행자, 강연자, 기획/연출자 등 다양한 역할을 주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춰서 음향과 퍼포먼스 비중이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년간 오래 연주해온 연주자는 ‘국소 이긴장증’ 같은 슬럼프를 겪기도 합니다. 혹시 연주하시면서 이런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있으신지,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아직은 신체적 어려움은 없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면 모든 고통이 사그라지는 것 같습니다. (웃음)

장기간 연주자 활동하는 분들은 몸이 상하는 일이 잦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관리에 신경을 썼다면 예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혹시 후배 연주자를 위해서 조언해주실 부분 있으신가요?

어머니께서 클래식 기타연주자셨기에, 항상 따뜻하게 알려주셨고, 잘 돌봐주셨던 점도 부상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주로 인한 각종 부상은 어쩌면 당연한 연주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부상을 부분으로 여기시더라도, 막상 다치셨을 때 극복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미국 버지니아주 미식축구 대표로 5개의 포지션을 뛰었습니다. 연주 활동으로 손에서 피가 나거나, 무대 아래로 떨어지거나, 무대 장치인 폭약이 잘못 터져 화상을 입는 사고들이 있었지만, 미식축구 생활에 비하면 가벼운 부상이었죠.

저는 미식축구 외에도 태권도, 야구 등 다양한 운동을 어릴 때부터 즐겨 왔습니다. 개인차가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 걸 잘 알지만, 운동을 병행한다면 연주 생활에서 오는 부상이나 어려움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항상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는 기타리스트 김세황이 되겠습니다.

기타리스트 김세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