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현악기 시장의 올드 악기 선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드 악기를 선호하는 현상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시간의 힘으로 잘 길든 악기에 대한 로망은 오늘날에도 있잖아요. 제 본업은 새 악기를 만드는 일이지만, 명기가 지닌 음향을 비롯한 미학적 가치를 감상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부여합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올드 악기 선호가 더 높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이올린의 역사를 약 500년으로 추정합니다. 본 고장인 유럽에서는 바이올린 제작이 수없이 이뤄졌고 이 중에서 시간을 견딘 악기가 올드가 된 거죠. 다시 이 올드 악기와 경쟁하며 발전적으로 새 악기를 만드는 선순환이 이어져 왔습니다.
반면 국내 환경은 달랐습니다. 90년대에 이르러 바이올린 전공자 수가 일정 규모를 형성하고, 취미로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는 층도 생겨나죠. 당시만 해도 새 악기 문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90년대 이전에는 국내에 새 악기 문화가 없었나요?
물론 70~80년대에 소신으로 묵묵히 악기를 만든 분이 계십니다. 다만 이분들의 활동이 하나의 큰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역부족이었죠. 이를 반증하는 것이 90년대 올드 악기 유입 현상입니다. 당시에 바이올린 수요가 급증하는데 해외 바이올린 공급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었죠. 만약 새 악기 시장이 꽤 형성되었다면 파이를 나눠 가졌을 겁니다.
올드 악기가 유입될 시기에 문제는 있었나요?
합당한 가격으로 올드 악기를 거래한 경우도 있지만, 출처가 확실치 않거나 품질이 낮은 악기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현재 국내 음악계 원로 및 중견 세대가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악기 선택이 폭넓지 못했습니다. 즉 좋은 새 악기를 만날 기회가 한정적이었죠.
권석철 바이올린 뒷판 바니싱
국내에 새 악기가 자리 잡기에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전문 연주자가 만족할 새 악기는 수준이 높아야죠. 현악기 제작자가 양질의 교육을 토대로 많은 경험을 거쳐야 좋은 악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국내 현악기 제작이 제대로 힘을 쏟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 지났습니다. 현재 통념으로 새 악기를 평가하는 건 시기상조라 봅니다.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새 악기가 활발히 제작되고, 연주자 역시 이런 악기를 많이 접해봐야 하죠.
국내 바이올린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바이올린 역사는 본고장인 유럽을 중심으로 흐르지만, 동양권으로 바이올린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바이올린의 역사에 대해서는 세밀한 연구가 아직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정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바이올린이 우리보다 먼저 자리잡았죠?
일본은 16세기 말에 서양 선교사가 찰현악기(‘비올라 다 감바’로 추정)를 섬에 가져와 연주하고 주민에게 가르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더불어 빠른 개항으로 바이올린의 유입이 우리보다 먼저 이뤄졌죠. 일본에는 19세기 말에 바이올린 공장이 설립되었고, 당시 기준으로 꽤 수준 높은 악기가 만들어졌습니다.
Viola da gamba / Wikipeda
국내에 바이올린 제작은 언제부터 이뤄졌나요?
국내에 바이올린이 들어온 시기는 일제 강점기이거나, 유럽의 동양 진출이 활발했던 19세기 말경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제작과 보급이 이뤄진 시기는 훨씬 늦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70년대에 공식적인 바이올린 제작 공장이 생기면서 국내에 현악기 제작 문화가 서서히 시작됩니다.
한국 바이올린 제작 1세대는 언제입니까?
과거에 무명 제작가가 계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국내에 최초로 알려진 바이올린 전문 제작가는 이주호 선생님입니다. 이주호 선생님은 1960년대 말에 독일 미텐발트 바이올린제작학교에서 제작과정을 이수하시고 70년대에 시카고에서 제작자로 활동하셨습니다. 더불어 ‘시카고 바이올린제작학교’장으로서 수많은 후학도 양성하셨습니다.
다음 제작 세대는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이주호 선생님께서 설립한 시카고 바이올린제작학교에 1970년대부터 유학 가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올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진출은 한참 후인 9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이뤄집니다. 이후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를 목표로 전문 과정을 밟는 학생수가 늘었습니다.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제작자가 많아짐에 따라 국내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최근에 이런 경로를 통해 국내에서도 바이올린을 제작을 접하는 인구도 많아졌습니다.
새 악기 문화가 자리한 유럽은 제작이 수월한 편인가요?
세계 어디서나 악기를 만드는 사람은 올드 악기와 피할 수 없는 경쟁에 직면합니다. 본 고장인 유럽의 제작 환경은 우리보다 나은 편이지만, 현지 제작가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지니고 활동합니다. 제 스승께서 “새 악기를 파는 일은, 올드 악기를 맹신하는 연주자에 대한 교육을 대동한다.”며 한탄 조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이탈리아에서 40년간 활동하시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올린 제작자인데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합니다.
올드 악기가 먼저 성행한 국내에서 새 악기를 만드는 일이 더 고되었겠네요.
과거에 올드 악기를 저렴하게 들여와 터무니없이 비싸게 거래한 일들이 지금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좋은 악기에 대한 시각을 왜곡시킨 거죠. 지금도 제값을 못하는 올드 악기가 좋다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악기 교육이 없었으니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 악기가 빛을 발휘하기는 더욱 어려웠죠.
새 악기가 바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 중에 품질 문제도 있죠?
네, 시장 특성뿐만 아니라 초창기 새 악기 품질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학을 가서 외국의 기술을 익혀도 당장 좋은 악기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악기 제작가도 연주자 못지않게 오랜 수련을 거쳐야 소리가 무르익은 악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새 악기의 인식이 더 개선되려면 그만큼 젊은 제작가들이 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권석철 제작가의 작업대 / ⓒ 이상권
보통 새로 만든 악기의 소리가 자리 잡으려면 얼마나 연주해야 하나요?
제 스승님께선 “좋은 새 악기는 출발부터 좋은 소리가 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바이올린 제작해오는 동안에도 이 주제를 끊임없이 되새겨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새 악기를 처음 연주하면 다소 답답한 느낌을 받다가, 시간의 지남에 따라 소리가 나아진다고 여깁니다. 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 악기가 만들어진 직후에도 좋은 소리가 나도록 연구했으며, 현재 꽤 괜찮은 해결책을 얻었습니다. 더불어 새 악기의 소리가 더 좋아지도록 지속해서 가다듬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부터 소리가 잘 나오는 악기는 시간의 해택을 받으면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새 악기를 길들일 때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연주하며 소리를 트는 것과 차이가 있나요?
연주자가 직접 활을 이용해서 길들인 악기를 따라잡지는 못하죠. 연주 과정에서 다양한 테크닉과 여러 음정을 고루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주량이 적은 취미생의 경우에 보조적으로 기계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순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새 악기는 관리를 잘 하면 훗날 명기 못지않게 소리가 좋아지는 거죠?
‘잘’ 만들어진 악기를 정성스럽게 관리하면 자연스레 소리가 좋아집니다. 미래의 스트라디바리가 될 수도 있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나 바로똘로메오 쥬제뻬 과르네리(과르네리 델 제수)도 모두 새악기로 출발했습니다. 그들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올드 악기와 대적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내고자 애를 썼을 것입니다.
새 악기를 선택한 연주자는 제작가와 지속해서 소통하며 소리를 잡아야 합니다. 새 악기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기 때문에 안정기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미래의 스트라디바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스트라디바리도 소리를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요?
Antonio Stradivari violin of 1703(Berlin Musical Instrument Museum)
악기에 관심이 높은 애호가나 이 분야를 탐구하는 제작자들에게 스트라디바리는 극찬의 대상이자 제작의 모범입니다. 실제 스트라디바리를 마주하면 마치 보석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음향적으로도 그렇지만 미학적 완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가 악기를 갓 완성했을 때의 소리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예요.
스트라디바리도 처음부터 완벽한 악기는 아니었던 말인가요?
예나 지금이나 완벽한 악기란 없습니다. 18~19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오늘날 명기라 불리는 바이올린에 ‘소리가 신통치 않아서 수리를 요함’이라고 적어놓은 대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기에 너무 터무니없는 환상을 뒤집어 씌워놓은 게 아닐까요? 악기 가격에 현혹되어 본질적인 가치를 보지 않은 채 맹신하는 게 아닐까요? 그 환상은 재미있게도 제작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농도가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도 환상의 크기가 여전하지만, 동양으로 오면 그 환상은 배가 됩니다.
제작가 입장에서 스트라디바리가 내는 소리의 비결을 아시나요?
스트라디바리 소리에 의구심을 지니고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주제를 확장해서 말씀드리자면, 19세기 중반부터 새 악기와 올드 악기를 직접 무대에 올려 ‘음향 대결’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실험 방식과 절차에서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올드 악기에 대한 무비판적인 맹신이 스트라드나 델 제수의 명성을 드높인 것이라 여기는 제작자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끊임없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을 설득시킬만한 특별한 답은 솔직히 없습니다.
정확한 답을 내리진 않아도 어느 의견에 무게를 두십니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제작가의 편에 무게를 둡니다. 명성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된 면들이 있다는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거죠.
새 악기의 완성도가 훌륭한 경우에, 뛰어난 음악인에게 연주되면서 유지보수를 잘 한다면 훗날 스트라디바리나 델 제수 위치에 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으로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일단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명기는 대부분 좋은 소리를 내는 건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에 완벽한 악기는 없고, 명기로 연주한다고 누구나 좋은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명기를 소유한 연주자가 악기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많은 시간을 악기와 씨름한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제작자마다 추구하는 소리의 성향이 있어서 명기라도 모든 연주자가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스트라디바리와 델 제수를 놓고 이야기해보면, 두 악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연주자 성향에 따라 한 악기를 택해서 활동합니다.
명기를 카피해서 제작하면 그 소리도 비슷하게 나옵니까?
전문 제작자가 카피할 경우에 소리의 성향 정도는 비슷하게 맞출 수는 있지만, 똑같은 소리를 만든다는 것을 어불성설입니다. 국내 현악기 소비층이 현악기 지식수준이 천차만별이라서 그만큼 카피에 대해서도 왜곡된 인식이 많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카피를 소재로 글을 준비 중입니다. 조만간 발표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바이올린 제작을 배울 때 옛 제작자의 몰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스트라디바리 디자인의 몰드로 첫 악기를 제작했고, 역시 스트라드바리  몰드를  이용해서 수강생을 가르칩니다. 유럽이나 미주에 있는 바이올린 제작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을 처음 배울 때 첫 시도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은 다양합니다. 스타라디바리 가(家), 아마티 가(家), 과르네리 가(家) 등등의 모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혹은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개발해낸 디자인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옛 이탈리아 악기 디자인의 가치와 오늘날 시장의 요구가 맞물려 가장 인기 있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 델 제수의 악기를 교육 현장에서 가장 널리 쓰입니다.
크레모나, 홍성, 서울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어느 시기에 가장 활발히 제작을 하셨습니까?
홍성에 있었을 때나 서울에 있는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한 대 한 대 만들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하는 거죠. 무엇보다 저 자신을 ‘바이올린 제작자’라 말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악기를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초기 작품보다 요즘 만드는 악기가 더 소리가 좋은가요?
당연합니다. 바이올린 제작이라고 다른 분야랑 다를 것은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든 처음보다는 나중에 더 발전해 있겠지요. 제가 악기를 제작한 지도 17년이 넘었고 조만간 100번째 바이올린 제작에 들어갑니다. 100번째 바이올린을 완성한 직후 그동안의 경험과 그를 통한 성과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관련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내분도 제작자이신데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 아내를 처음 만난 건 크레모나에서 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한국에 잠시 들어와 결혼식을 올린 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젊었을 때는 같은 일을 하면서 티격태격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둘 다 둥글둥글한 돌이 되어서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제 동반자로서 사랑함과 동시에 제작자로서도 존경합니다. 제가 없는 면이 제 아내에게 있기 때문이죠.
두 분이 공방에서 역할도 겹치나요?
공방에서는 서로 맡은 업무가 다릅니다. 저는 악기 제작을 하면서 제작과 수강을 하고, 제 아내는 악기/활 수리를 맡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한 업체에서 수리가로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좋은 악기가 거래되고 훌륭한 연주자가 애용하는 곳이어서 그만큼 경험도 풍부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정교한 악기 수리 솜씨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도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악기 제작을 합니다. 다른 악기도 만들지만 주로 비올라 제작에 몰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나요?
악기 제작은 밖에서 보기엔 단순한 기술직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폭넓은 탐구 영역입니다. 목공 기술을 비롯해 음악사, 음향물리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지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려면 졸업 후 수련이 필요하듯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오랫동안 연구자의 자세로 꾸준히 제작을 해나가야 합니다. 더불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지속해서 소통하며 지식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올린 제작 세계를 알리려는 시도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내에는 아직 악기에 대한 올바른 지식보다는 오해와 곡해의 소문이 더 많이 돌 때가 많습니다. 제작자가 열린 공간에서 악기 제작에 대한 공론장(Public Sphere)을 형성할 수 있다면 올바른 악기 문화가 더 이르게 자리잡겠죠. 아울러 악기 애호가와 소비자분들께서도 악기를 더 가까이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함께 즐기는 악기 문화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현악기 제작가 권석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