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는데, 처음 계획과 비교해서 진행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은 있나요?

마지막 투어에 앞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마치고 싶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전곡 앨범이 나왔겠지만, 진행 과정에서 차질이 생겼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6곡만 앨범으로 발표한 상황에서 전곡 연주회부터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슈베르트 작품을 무관중으로 홀에서 녹음을 진행할 때와 실제 연주회를 진행하실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연주 환경이 바뀐다고 음악 자체가 변하지는 않아요. 다만 분위기를 따라서 연주할 때 신경을 쓰는 지점이 달라지죠.

연주회를 하실 적에는 주로 어느 부분에 신경을 쓰나요?

연주회는 한 번에 끝내야 하잖아요. 미시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제가 곡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표현들을 온전히 객석에 전달해야 해요. 말하자면 연주에 크게 몰입하죠.

녹음 과정에서는 미시적인 부분에 신경을 더 쓰나요?

녹음할 때는 실수가 나와도 다시 작업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연주회만큼 집중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힘든 면도 있죠.

프로듀서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잖아요. 되도록 실수를 안 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연주회보다는 신경을 더 쓰죠.

어떤 피아노를 선호하시나요? 연주 환경에 따라서 선호 피아노가 달라지나요?

제 피아노 선택 기준은 녹음이나 연주회나 똑같아요.

너무 ‘밝은(bright)’ 음색보다는, 적당히 밝으면서도 둥글둥글한 소리를 선호합니다. 이러한 음향적 특정을 지님과 동시에 제가 의도대로 바로바로 반응을 해주는 피아노가 좋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살펴보면 화성, 선율 등이 뛰어나죠. 음악적인 재능이나 아이디어는 분명 풍부한 작곡가예요. 그렇지만 피아노에 능숙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느껴요.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비교하면 곡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나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중에는 습작 같은 작품도 껴 있거든요. 그래서 연주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다루기 어려운 점을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이번 공연 프로그램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D.850)’은 규모가 큰 작품이에요. 곡 전체 길이가 40분 가까이 되죠. 문제는 모티브가 단순하면서도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에 있어요.

어떻게 연주를 해도 지루함을 피하기가 어렵죠. 그렇다고 반복 패시지 마다 다른 아이디어를 부여하면 곡이 지나치게 조잡해지기도 하고요.

고민 끝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게 되셨나요?

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소리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단조롭게 반복되는 틀 안에서 최상의 음향을 만들자고 접근한 거죠. 쉽게 말해 톤에 중점을 두면서 곡을 풀어냈어요.

이번 공연 프로그램을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이 고르게 구성하셨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프로젝트 공연을 총 다섯 번에 걸쳐 진행했어요. 우선 후기 소나타 5개를 시기별로 하나씩 배치했죠. 여기에 초기와 중기 작품을 비슷하게 갈 수 있도록 적절하게 나눠서 구성했어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작품 시기별 특징은 어떻습니까? 이번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초기 소나타(D.566)는 선율이나 화성이 짜임새가 있어요. 미숙하단 느낌이 들진 않아요. 반면 중기 작품(D.850)은 사이즈가 커진 대신에 구성면에서 아쉬워요. 아마도 작곡가가 피아노 작품의 규모를 키우고 한 차원 더 높은 작법을 구사하고픈 욕심이 생겼던 거 같아요. 연주에서 기교적으로 까다로운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후기 소나타(D.960)는 한 과정을 거친 후에 나오는 원숙함이 곡 전체에 묻어나죠.

피아니스트 김정원 / WCN 제공

곡을 해석하실 때 악보에 집중하는 편입니까? 문헌 정보를 활용하는 비중이 큰 편입니까?

두 방식 모두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무엇이 중요하고 뭘 더 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우선 작품의 배경을 파악하는 건 절차와 의무를 떠나서 호기심의 영역이기도 하죠, 작품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시대상이나 작곡가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작품에 대한 상상력을 더 명확히 발휘할 수 있죠. 반면 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때는 악보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빈에서 공부한 시절에 슈베르트 생가에 자주 들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생가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기도 했나요?

슈베르트 생가가 직접 영감을 주는 건 많진 않아요. 막상 가보면 안경 몇 개와 자던 침대 정도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빈이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음악적인 분위기는 있었죠.

이를테면 학교 오가는 길에 지나는 한 공원이 있었어요. 여기서 슈베르트가 어떤 가곡을 썼다고 알려졌죠. 이런 식으로 작곡가와 연관된 곳을 거닐 당시에 느낀 것들이 자연스럽게 제 연주에 묻어난 것 같아요.

유명 레퍼토리는 이미 수많은 연주자가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연주자로서 앨범을 내시는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나온 이후에 지금까지도 무대에 계속해서 재탄생하고 있죠. 마찬가지로 연주자마다 다른 호흡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즉 피아니스트인 제게 악보는 호흡할 수 있는 매개체이지, 제 연주에는 저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음악을 처음 들을 때는 어떤 곡이 좋은지를 찾지만, 나중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가 누구인지 찾아서 듣잖아요. 여기에서 연주자의 역할과 앨범 발매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5번’처럼 남들보다 먼저 음반으로 내신 작품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기존 유명 레퍼토리를 녹음할 때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가요?

스탠다드 레퍼토리는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듣게 되죠. 의도하지 않아도 제 머릿속에 남아서 비슷하게 해석하는 일도 생기거든요.

물론 피아니스트가 연주에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면 다른 연주에 흔들리지는 않아요. 다만 타인의 연주를 들으면서 구성이나 짜임새 등을 파악하며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받긴 하지만요.

반면 첫 음반을 맡은 곡은 악보를 가지고 오직 나의 상상력으로만 구축해야죠. 막막한 점도 있지만, 신선하고 즐거운 작업이기도 해요. 특히 사람들이 제 연주로 곡을 처음 접한다는 보람도 있고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생전의 라흐마니노프가 바라던 대로 교향곡 2번을 편곡해서 탄생했습니다. 첫 녹음 과정에서 편곡자인 바렌베르크와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셨나요?

바렌베르크에게 자문받기도 하고, 반대로 제가 연주하면서 느낀 부분을 그에게 피드백해주기도 했죠. 슈베르트에게는 직접 물어볼 수가 없지만, 살아있는 작곡·편곡자에겐 직접 소통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라흐마니노프 5번의 첫 레코딩은 제가 했지만, 첫 연주는 러시아에서 데니스 마추예프가 했어요. 첫 라이브 당시에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밸런스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요. 바렌베르크가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서 레코딩 전에 곡을 수정해주셨어요. 이런 식으로 곡을 만든 사람과 연주자가 소통하면서 함께 구축해갈 수 있어요.

피아니스트 김정원 / WCN 제공

대중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시는 편입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한 대중음악가의 공연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어요. 클래식과 비교해서 대중음악이 직관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연주회 분위기 자체도 관객에게 친절하단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클래식 음악회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클래식 음악의 특성상 모든 공연이 대중과 소통하는 분위기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클래식만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죠. 클래식 공연 문화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으로 관객과 소통을 지향하는 공연을 시작했어요.

공연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음악적으로 얻는 점도 있나요?

시작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한 것이지만, 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점도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부분도 관객에게 풀어서 설명해드려야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고 공부가 되기도 하죠.

이번 슈베르트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구리 아트홀에서 번외로 첫 공연을 했어요. 연주에 앞서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이날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로부터 연주 직전에 한 이야기로 인해서 연주를 감상할 때 상상력이나 감수성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마찬가지로 저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연주에 더 몰입할 준비가 되었죠.

진행자로서 다른 연주자의 무대를 옆에서 지켜볼 때 평소보다 곡이 더 잘 보이시나요?

훈수를 둘 때 잘 보인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웃음)

진행자로서 다른 연주자의 무대를 바로 옆에서 감상할 때 분명 객관적으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어요. 제가 놓쳤던 부분을 깨닫기도 하고, 어떤 지점에선 다르게 연주하는 방식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제 연주를 냉철하게 복기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걸 느꼈죠. 사실 제가 연주한 음반이나 영상을 잘 보지 않았어요. 막상 연주 당시에 몰입했지만,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민망하면서 괴롭기도 했었거든요.

슈베르트 전곡 프로젝트의 끝을 앞두고 계십니다. 소감은 어떻습니까?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건 있어요. 한두 곡을 연주할 때와 다르게 작곡가와 오래 살아본 듯한 경험을 했거든요. 그만큼 작품에 깊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죠.

제가 전곡 단위로 약속을 해놓고 연주 활동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을 가두고 짐을 안고 가듯이 활동을 했어요. 지금으로서는 또 다른 전곡 프로젝트를 할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소개해주세요.

올해 ‘김정원의 음악신보’에서 여러 편성으로 슈만의 음악을 다뤘어요. 내년에는 같은 방식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을 5번에 걸쳐 공연할 예정이에요.

유럽에서 연주회 일정을 조금씩 늘리고 있어요. 아직 학구적인 계획은 구체적으로 잡은 건 없어요. 다만 제가 독일 음악을 좋아하니까, 다음 프로젝트는 이쪽과 관련한 걸 진행하지 않을까요. 구체적인 고민을 한 건 아니지만요.

피아니스트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