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이번 <2018 마스터피스 – 황병기>에서 선보인 ‘심향(心香)’은 어떤 곡입니까?

작품 제목인 ‘심향(心香)’은 ‘마음의 향기’를 뜻합니다. 올해 초 타계하신 황병기 오마주 헌정 곡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위촉을 받아 작곡했습니다. 황병기 선생님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청정한 음악의 향기를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창작했습니다.

Q.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참향무(沈香舞)’를 오마주를 했나요?

관현악을 위한 ‘심향’은 황병기 선생님께서 ‘침향무’를 통해 세상에 던졌던 삶과 자연, 신에 대한 질문을 관현악으로 답하는 형식입니다. ‘향’이 내포하는 음악적 형상화와 더불어 제전적, 주술적 의미들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Q. 참향무와 심향을 비교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침향무’는 가야금을 통해 구현한 ‘순간의 미학’입니다. 황병기 선생님은 평소 “가야금 한 음을 튕기고 울렸을 때가 가장 순수한 순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잔향 즉 ‘여운’이 주는 운치까지 한국음악의 정수라 하셨습니다.

‘심향’에서는 한 음 한 음이 혈맥처럼 뛰었다가 사그라지는 음악적 아이디어에 집중했습니다. ‘침향무’는 가야금 독주곡이지만 ‘심향’은 협주곡 편곡이 아닌 관현악을 위한 합주 협주곡으로 작곡했습니다. ‘침향무’의 선율적 윤곽이나 주제 선율은 가야금 합주(25현 가야금, 4~8인)나 아쟁 합주, 대금 합주 등으로 분산되어 펼쳐집니다.

Q. 심향의 곡 구성을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전체 형식은 ‘침향무’와 마찬가지로 중모리, 엇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장단 등 ‘느리게에서 빠르게’로 진행되는 산조 장단의 형식을 따릅니다. 다만 도입부, 연결구, 장단 변형 등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전개를 확대하고, 절정부를 만들어 새롭게 들리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향이 퍼지는 음악적 파문과 여운의 형상화를 위해 양금, 비브라폰, 마림바 등 다양한 색채의 타악기를 사용했고 소금, 훈, 생황 등의 악기들을 통해 음향이 허공에 퍼져나가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했습니다.

Q.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마디로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은 ‘절제와 파격’입니다. 농축된 음악 언어를 통해 한 음 한 음 청중에게 명상과 여운의 시간을 제공하고, 인간 내면 깊숙이에 있는 고귀한 가치들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파격’과 ‘도전’의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늘 현대적이며 파격적인 창작에 관심을 지니셨습니다. 이런 점이 실험적인 가야금 창작곡을 작곡하시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황병기 선생님로부터 ‘국악 칸타타’ 어부사시사를 위촉받아 무대에 올리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특별히 주문받은 내용이 있습니까?

2009년 황병기 선생님께서 ‘어부사시사’를 위촉하실 때 두 가지 주문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는 음악이자 대중과 소통이 원활한 작품이길 바라셨고, 두 번째는 국악관현악단을 많이 활용할 수 있게 구성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Q. 어부사시사를 작업할 때 음악적으로 새로운 점은 있었나요?

‘어부사시사’는 윤선도의 시(text)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관현악과 합창이 함께 연주하는 칸타타(교성곡) 형식으로 작곡하기로 조율했습니다. 그 덕분에 약 130여명이 참여하는 최초의 “국악칸타타” 형식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Q. 어부사시사의 악기 배합은 국악 중심으로 하셨나요?

악기 배합을 자유롭게 하라고 해주셨습니다. 우리 관현악을 밑그림으로 서양식 현악 앙상블을 추가했고, 여기에 호른과 팀파니 등을 활용해서 작곡했습니다. 각 악기가 꼭 필요한 부분에서 자연스러운 음악적 조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작곡가 김준희 / 국립국악교향악단 제공

Q. (서양음악과 국악을 이분화해서 보는 독자들도 계시는데) 작곡가로서 요즘 창작음악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 시대에서는 서양음악과 국악을 꼭 이분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모든 색깔, 모든 오브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듯이 작곡가도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모든 악기와 어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작곡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곡가의 사상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서 사랑, 평화, 치유, 회복 등과 같은 인간 영혼의 고귀한 가치들을 함께 공유하기 위한 예술적 행위입니다.

Q. 임준희 작곡가님의 초기 작품은 국악적인 요소가 일부 있긴 했지만, 현대음악의 작품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작곡을 시작하셨나요?

처음 작곡을 할 때는 음악의 기법적인 면이나 남들이 작곡하지 못했던 새로운 곡을 다루고픈 욕구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그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곡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Q. 어느 시점부터 국악의 가락이나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셨는데, 이렇게 변화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지난 2002년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당시에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은 무엇일까, 즉 영혼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영혼에 닿을 수 있는 음악을 국악에서 찾았습니다. 전통음악, 국악기 등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무한한 창작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는 공감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대체로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현대음악이지만) 임준희 작곡가님의 작품은 곡이 귀에 잘 들어옵니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작곡하면 할수록 연주자들과 청중이 소통할 수 없는 음악은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고 청중이 공감해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곡을 작곡하는데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창작자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에 귀를 기울인다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청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이 탄생할 것입니다.

Q. 국악기 특성상 공연장에서 마이크를 사용해서 공연해야 합니다. (마이크를 거쳐 스피커로 소리가 나오면 음색이 변할 우려가 있는데) 작곡가로서 무대 음향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하시는 편인가요?

기본적으로 국악기 연주에 있어서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국악기의 음향은 자연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국악기 특성에 맞춘 어쿠스틱 공연장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피치 못하게 큰 공연장에서 공연할 때나 음반 제작을 위해서 음향기기의 보조를 받아야할 때가 있습니다. 음향기술 측면에서 섬세한 배려를 요구합니다.

Q. 전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옛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창조해 물려줌으로써 미래의 전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Q.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곡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악은 낯선 시도에서 그치고, 어떤 음악은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새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실험과 시도는 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실험과 시도에서 철저한 연구와 고민이 선행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결국, 장인정신으로 만든 완성도가 높은 예술적 결과물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짤막하게 소개해주세요.

올해 가을에는 제 작품인 ‘독도 오감도’가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호주 시드니에서 공연합니다.

지난 2015년 KBS교향악단에 의해 위촉 및 초연한 교향시 ‘용비어천가(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를 올해 10월 21, 26, 28일 뉴질랜드에서 오클랜드 심포니가 다시 연주합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음악이 해외에도 소개되길 바랍니다. 더 많은 관객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에 공감하고 인류 보편적인 고귀한 가치들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작곡가 임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