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언제부터 연주를 시작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사촌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타를 사줬습니다. 칠 줄도 몰랐지만 밤새 가지고 놀았죠.

본격적으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한 건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을 때입니다. 중학생 때는 튀는 걸 좋아하잖아요. 표면적으로 베이스가 드러나는 악기가 아니어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베이스를 맡았죠. (웃음)

제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편입니다. 돌이켜보면 베이스가 제게 딱 들어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재즈, 힙합,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 세션으로 참여하십니다. 음악관이 자유로운 편인가요? 

아버지께서 클래식 연주자입니다.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완고한 이미지와 다르게 가요, 팝, 록 등 음악을 가리지 않고 두루 즐기셨습니다. 집안 분위기 따라 저 역시 다양한 음악에 자연스레 노출되었죠.

조그만 우연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했던가요. 어릴 적에 채널을 돌리다 AFKN에서 마빈 게이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음악이 제 가슴에 제대로 꽂힌 거죠. 그날부터 블랙 뮤직 위주로 즐겼고, 그 특유의 리듬이 좋아서 기타로 따라 하기도 했죠.

블랙 뮤직에 빠진 순간부터 베이시스트가 되기로 하셨나요? 

막연한 꿈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건 중학교 시절입니다. 어느 날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이 곡은 어떤 사람이 연주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앨범 크레딧을 뒤져보고 이것저것 수소문해본 결과 스튜디오 세션맨이란 직업을 알아냈습니다.

내 연주가 아티스트의 음악을 더 빛나게 해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더불어 이런 생각도 들었죠. 과연 마이클 잭슨이 앨범에 모든 연주를 다 지시했을까. 아마 마이클 잭슨도 세션 연주자와 소통하며 하나씩 잡아나가지 않았을까요?

그날 이후 아티스트에게 기반이 되는 연주자가 되자고 결심했죠.

연주자로서 아이덴티티가 블랙 뮤직에 가깝나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렇지만 저는 베이시스트로서 연주에 장르 구분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음악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잖아요. 다만 저는 블랙 뮤직으로 다른 장르의 곡을 재해석해서 연주하기를 더 선호하죠.

힙합은 샘플링 기법을 많이 쓰잖아요. 베이스 연주를 접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90년대 이스트 힙합을 즐기면서 여기에 제 베이스 연주를 곁들였죠. 왜 힙합을 악기로 연주하는지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힙합은 샘플링을 쓰면서 일부러 끊기거나 어색한 구간이 반복되는 걸 노리잖아요. 저는 이 느낌 그대로 연주하는 걸 즐겼습니다. 드럼이나 피아노가 받쳐만 준다면 베이스로 멋진 힙합 리듬을 만들 수 있겠단 확신이 있었죠.

국내 힙합 베이시스트 1세대라 불러도 될까요? 

활동 기회가 조금 더 빨리 주어졌다면 힙합 베이시스트 1세대가 되었을 수도 있죠. 저보다 일찍 활동하신 분이 계시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올드 스쿨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그 음악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편으로 조금 더 힙합적인 색을 가미했어도 괜찮았겠단 생각도 들죠.

블랙 뮤직에 맞는 베이스 연주는 독학이시죠? 

당시에 힙합을 베이스로 연주하는 사람도, 이를 가르쳐줄 사람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듣고 따라 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음악을 더 분석할 수 있는 귀가 생긴 거죠.

당시에 외국 방송을 듣다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테이프에 녹음했습니다.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서 일부 구간만 담기는 일이 발생해도 반복적으로 그 부분을 베이스로 연주했습니다. 막연히 좋아서 한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참 좋은 훈련이었죠.

당시 연주 연습과 훗날 세션으로 활동하실 때 괴리가 있었나요? 

제가 블랙 뮤직에 빠져 지냈기 때문에 힙합이나 알엔비 연주할 때 오는 괴리는 적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다른 연주자보다 레이백(lay-back)이 많은 편이에요. 옥타브 가변하는 연주도 즐기는데 다른 장르에선 어색할 수도 있죠. 하지만 힙합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거든요. 어릴 때부터 체득해온 베이스라인이나 기타 주법을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구사합니다.

베이스 연주 스타일을 장르마다 맞춰가는 편인가요? 

장르를 고정하기보다는 곡을 중심으로 놓고 제 연주를 맞춥니다. 가사 내용 비롯해 전반적인 느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다음에 제 연주가 이 곡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합니다. 특히 저는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소리가 풍부하다고 여기고 있어서 양손을 가지고 톤을 조율해갑니다.

베이스 톤도 장르마다 다르게 작업하시나요?

곡의 분위기, 악기 구성, 레퍼런스 등을 따진 후에 제 베이스 역할을 고민해봅니다. 제가 원하는 소리가 잡혀야 곡에 감정이 녹아들도록 작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톤은 저역이 풍부한 소리입니다. 저역을 살려 놓은 채 중역과 고역을 조율하는 식으로 톤을 만듭니다. 앰프나 이퀄라이저는 잘 써도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러움을 위해 손으로 소리를 잡아가는 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톤을 만드는지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작업한 주노 플로의 ‘인피니트 스타일’과 비지형의 ‘검은머리 파뿌리’ 경우엔 팜 뮤트 주법을 사용했습니다. 설명해드리자면, 소울 밴드의 전성기라 불리는 60년대에는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브릿지에 커버를 달아서 생산한 악기가 많았거든요. 이 커버 안에 스펀지가 있어서 줄을 누를 수 있죠. 이렇게 음색을 조율하는 방식이 팜 뮤트죠.

타이거 JK 형의 ‘반가워요’ 녹음에는 앞쪽 픽업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앞쪽 픽업을 사용하면 저음역이 풍부해지고 퍼지는 소리가 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뭉뚝한 소리가 나서 올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죠. 반면 국악인 김소라 씨 앨범에는 뒤쪽 픽업을 사용하여 저음역이 좁아지고 단단한 소리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신만의 연습방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기능적 연습도 중요하지만, 음악적 마인드를 키우는 훈련이 더 중요합니다. 음악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만큼 연주자로서 활동 범위도 늘어납니다.

주로 혼자 연습하는 환경에 놓인 분을 위한 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코드를 입력하고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템포에 따라 연주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특히 연습할 때 템포나 조성을 변형해가며 연주해보시면 좋습니다. 연주에 확장성을 두고 훈련하면 무대 위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연주와 연습은 분리되있는 것이 아니니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시는 걸 권유합니다.

선호하는 악기 브랜드가 있나요? 

2007년 윤미래 콘서트 처음 세션으로 참여했을 때 펜더 재즈베이스 2대 가지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가 서포터 없이 손으로 하는 연주를 즐기는 편이라, 오히려 펜더 기타 특유의 자연스럽게 퍼지는 음이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악기의 한계를 느끼고 콘서트 이후에 알렘빅 베이스 기타를 썼어요. 이 악기로 드렁큰타이거 8집을 비롯해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악기 소리에는 만족했지만 문제는 바디가 꽤 묵직합니다. 무거운 악기로 연주할수록 건초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악기 선택에는 소리 외의 다른 부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았죠.

건초염을 겪으셨다면 악기 선택의 관점이 바뀌셨겠네요?

과거에는 소리가 좋으면 내 몸이 불편한 건 상관없다고 여겼습니다. 건초염으로 연주에 위기를 겪은 후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부상으로 반년 가까이 연주를 거의 못했습니다. 연주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고통스러운 날의 연속이었죠. 더불어 당시에 제게 온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치기도 했고요.

연주자는 당일 컨디션은 물론 장기적인 몸 관리를 해줘야합니다. 연주 전후에 스트레칭을 해주 고, 연주로 몸이 불편한 지점이 있으면 바로바로 원인을 찾아 해소해야합니다. 절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심하면 연주를 그만두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악기를 고르는 기준에 부합하는 악기를 찾으셨나요?

제가 악기를 고를 때는 바디 밸런스가 잘 잡힘과 동시에 손으로 만드는 소리의 질감을 잘 받아주는지를 고민합니다. 이 기준에 라크랜드가 가장 가까웠습니다.

악기 입문자와 전문 연주자 간에 악기 브랜드 인식이 좀 다른 경우를 접합니다. 연주자 겸 교육자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악기 입문자는 대게 단기간에 실력이 향상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아마추어가 연주자는 유명 아티스트가 쓴 제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를테면 펜더 기타를 쓰는 연주자가 많으니까 그만큼 펜더 선호하시는 입문자가 많은 거죠.

전문 연주자는 여러 악기를 접할 기회와 경험이 아마추어보다 월등히 많죠. 그만큼 특정 브랜드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역시 실력 향상을 위해 연습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몸과 성향에 맞는 악기를 찾는 과정에 익숙해져야합니다.

아마추어일수록 악기 가격과 성능을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싼 악기가 좋긴 합니다. (웃음)

그런데 소리가 가격에 비례하는지 묻는다면 그건 꼭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가의 악기일수록 소리 자체보다 바디 밸런스나 세밀한 부분에서 개선사항이 뚜렷합니다.

때로는 저가의 악기가 내는 소리가 연주에 더 어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현재 제가 쓰는 베이스도 가격 측면으로는 엄청 비싼 편은 아닙니다. 악기마다 내는 소리에 개성이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맞는 악기를 찾는 게 중요하죠.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슬럼프가 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가까운 강가를 찾습니다. 강에서 사람들도 보고 발 담그고 앉아서 쉬기도 합니다. 때로는 낙원 상가나 광화문에 들러서 인터뷰하듯 사람들과 말을 섞기도 합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교감을 하고 나면 점점 제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쉬는 과정이 연주에 도움이 되던가요? 

TiTuS Fusion Unit 앨범

일정을 취소하고 쉬는 일이 슬럼프 극복에는 좋지만 연주에 크게 남는 건 없습니다. 고민 끝에 슬럼프 기간에 작곡을 시도했습니다.

쉬는 동안에 노트를 펼치고 자유 기술로 작곡 아이디어를 모읍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을 기반으로 여러 곡을 쓸 수 있었죠. 이 과정을 거쳐 프로젝트 앨범(TiTus Fusion Unit / I’ll Be Waiting For You)을 내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곡이 있는데 제 솔로 앨범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향후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올해 솔로 앨범을 기대해도 되나요? 

시간이 귀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요즘입니다.

여러 일이 겹쳐서 앨범이 언제 정확히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제 앨범을 꾸며줄 동료들과 협업하는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습니다. 작업 방향에 따라서 앨범 구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16 자라섬재즈페스티벌 / TiTuS Fusion Unit

마지막으로 연주자로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전문 연주자도 있지만, 저처럼 그렇지 못한 분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음악계에서 인건비 착취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때에 돈을 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심하면 받지 못 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양질의 예술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연주자로서 설 자리도 줄고 있습니다. 클럽이나 공연장에 마련된 무대가 점점 줄고 있죠. 잠시나마 버스킹 문화가 활발해지면서 연주자 혹은 연주자 지망생에게 설 자리가 늘어난 적도 있지만, 여기에 부정적인 시각이 생기면서 이마저도 점점 시들해졌습니다.

국가예술가지원이 자리잡혀 가면서 제도적으로 좋게 바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 문화적인 시각이 바뀌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더불어 이 문제는 단기간 바뀌기 어렵기도 해서, 연주자 입장에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은 지점을 고민해서 나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베이시스트 허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