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이한나 씨의 비올라는 어떤 악기인가요? 

제 비올라를 비유하자면 ‘아기’입니다. 커티스음악원에 다닐 적에 근처 악기 공방에서 만든 비올라입니다. 이 비올라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 연주해왔으니까, 이제 갓 10년이 넘은 셈이죠.

새 악기를 바로 사용한 건가요?

네, 제가 첫 주인입니다.

비올라의 소리가 트기까지 어느 정도 걸리셨나요?

처음 악기를 연주했을 때도 소리가 잘 나왔어요. 소리를 길들이겠단 생각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지닌 악기라 여기고 연주해왔습니다.

새 악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비올라는 올드 악기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아요. 새 악기도 올드 악기 못지않게 소리가 좋습니다.

바이올린은 치수가 표준화된 반면, 비올라는 여러 치수가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시는 비올라는 치수가 어떻게 되나요?

15 3/4을 사용합니다.

비올라는 16 이상 치수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치수의 비올라를 연주하시는 건 더 밝고 경쾌한 소리를 내기 유리해선가요?

제 비올라는 15 3/4으로 작은 치수이지만, 큰 치수 비올라를 작게 카피한 악기입니다. 헤드 부분도 크고 길어서 겉보기에 작은 치수로 보이질 않죠. 소리 역시 가볍지 않습니다. 더불어 소리에 한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울림보다 소리에 포커스가 잘 맞는 악기를 선호합니다

다른 악기를 거치지 않고 비올라를 바로 시작하셨나요?

어렸을 적에 다양한 예술을 즐기듯 경험하면서 제 성향이 음악에 맞는 걸 알았죠.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연주했지만, 비올라가 제게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제 목소리 자체도 낮은 편이라 비올라의 음색이 익숙했고, 제 손 크기도 비올라 연주에 알맞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비올라를 접하고 큰 고민 없이 이 길을 택했습니다.

여러 스승을 사사하셨습니다. 스승에게 배우실 때 어떤 면에서 영향을 받나요?

배움에서 모방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레슨 과정에서 스승의 연주를 유심히 지켜보며 따라 하게 됩니다. 더불어 대화를 나누며 스승의 음악관에 자연스레 노출되죠. 킴 카쉬카시안 선생님께 배울 적에는 제 연주가 선생님과 비슷하단 소리를 들었고, 노부코 선생님을 거치면서 또 다른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 배움을 거치며 제 음악적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져 왔습니다.

연주자 활동과 교육을 병행하잖아요. 가르치시는 학생은 이한나 씨의 연주를 따라 하나요? 

주변에서 제 학생의 연주를 들으면 저와 스타일이 똑같다고 말해요. 아무래도 제 음악회에 자주 오고, 레슨하며 제 영향을 받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현재 연주와 교육의 비중이 어떻게 되십니까.

양쪽 모두 비슷하게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도 있지만, 제가 왕성히 활동할 시기여서 지금보다 더 연주하고픈 마음은 늘 있죠. 그렇지만 제가 원체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교육도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lhn851212)을 살펴보면 학생과 찍은 사진이 많습니다. 엄한 편인가요? 친근한 편인가요?

저를 어떤 선생으로 생각할까요? 제자 마음 속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제자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엄격해야 할 순간이 오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도 노력합니다.

뛰어난 연주자가 되려면 재능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노력과 환경의 비중이 크다는 상반된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연주자이자 교육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체감하십니까?

똑같이 가르쳐도 유독 빨리 흡수하는 아이가 있어요. 배움이 더딘 아이도 있지만, 그중에는 몇 년 뒤에 다시 연주를 들으면 놀랄 정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죠. 제가 감히 한 사람의 인생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단 정말 이 아이에겐 음악이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상황도 겪습니다. 이럴 때는 조심스럽게 다른 경험을 두루 해보도록 권합니다. 이 아이가 음악가로 성공 못 한다고 단정해서가 아니라, 음악 외에도 무수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기니, 음악에만 매달리다가 다른 길을 놓칠까 봐 우려해서죠.

ⓒ Oscarscar

봉사활동, 영화 OST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체력이 좋은 편인가요?

아직 젊잖아요. (웃음)

연주 일정이 꽤 많은 편이죠?

보기 나름인 거 같아요. 저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분도 계십니다. 연주 횟수가 같아도 해외를 오가며 활동하면 체력적인 부담이 더 옵니다. 요즘은 제가 한국에서 주로 활동을 하니까 최근까지 일정이 몸에 큰 무리를 주진 않았습니다.

어떤 연주자는 협주곡이나 난곡을 연주하면 지친 기색을 드러냅니다. 반면 이한나 씨 연주에선 그런 모습이 유독 보이질 않습니다. 무대 위에서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서겠죠?

제가 일부러 힘이 넘치게 보이려고 한 적은 없어요. 무대 위에서 축 늘어진 적도 없고요.

곡마다 감정이 담겨 있잖아요. 흥이 나는 음악을 들으면 힘이 나듯이 연주하면서도 음악을 타고 기운을 차립니다. 지친 듯이 흐르는 음악을 할 때는 또 그런 상태가 도움될 때가 있고요.

바르톡 비올라 협주곡 (비올라 이한나 / 지휘 김종덕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장기간 연주 활동으로 몸에 무리가 간 부분이 있나요?

부상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곡이나 연주 상황에 따라서 팔이 아플 때는 있어요.

후배 연주자에게 부상을 어떻게 예방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 역시 부상관리 노하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자면, 연주자에게 스트레칭은 정말 중요합니다. 학생이 연주하다가 아파하는 기색이 있으면 스트레칭을 하라고 권합니다. 잠깐 몸을 풀어주면 될 부분도 그대로 연주하다가 병을 키우거든요. 저도 어릴 적에는 스트레칭에 소홀했는데, 연주 전후로 굳은 몸을 풀어주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걸 뒤늦게 체감했습니다.

ⓒ Oscarscar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나요? 있다면 극복하는 방법은 어떻게 되시나요?

글쎄요. 아직 슬럼프라 할 만한 걸 크게 겪지는 않았어요.

‘슬럼프 없는 연주자’인가요?

그런 뜻으로 답한 게 아니에요. (웃음)

누구나 연주 활동에 우여곡절은 있죠. 잘하고 싶은데 연주가 잘 따라주지 않는 건 흔히 겪는 일이잖아요. 연습하다 보면 유독 걱정스러운 부분이 나옵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더 주의 깊게 연습해도, 막상 무대에서 딱 그 부분을 실수할 때가 있어요.

이런 실수가 나오면 밤새 생각납니다. 그렇지만 이걸 슬럼프라 여기고 더 골몰하면 자책만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여러 슬럼프를 겪어 왔을 수도 있어요. 다만 의식적으로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연주 직전에 긴장을 달래기 위해서 특별히 취하시는 방법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바나나와 오렌지 주스가 좋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공연 전에 식사하기도 어려워서, 바나나 먹고 주스를 마시면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그 외에는 긴장을 달래기 위해 특별히 복용하는 건 없습니다.

긴장을 줄이고자 약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한번 시작하면 계속 의존하게 될까 봐 저는 아예 손을 대지 않습니다.

평창 겨울음악제 리허설(김규연, 이상 엔더스, 이한나 임지영) / 이상권

연주자는 악기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올라가 성격에 영향을 주나요?

여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연주자 사이에선 ‘비올라 연주자가 성격이 좋은 편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올라가 첼로와 바이올린의 중간 음역에서 연주할 때가 많잖아요. 비올라 연주는 두 악기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하니, 연주자 성격 역시도 둥글둥글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이한나의 비올라는 다채롭다는 평이 있습니다. 연주에 실험적 해석을 하시는 편인가요?

제 연주에 실험을 추구하기보다는, 그저 작곡가와 소통하는 자세로 풀어갑니다.

어떤 곡에선 첼로가 선율을 맡고 비올라가 베이스를 담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대로 비올라가 바이올린보다 위에서 연주해야할 때가 있죠.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신뢰하면서 그 역할을 부여한 것이니, 기본에 충실하면서 곡을 받아들입니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이관규, 이한나)


브람스 곡이 어려웠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브람스가 유독 어려운 작곡가인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브람스입니다. 몇 달 전에 브람스 전곡 리사이틀도 하고, 실내악도 브람스 곡을 즐겨 연주했습니다. 말하자면 브람스의 곡이 제 연주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렇게 애착이 가는 만큼 제게 브람스는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예정이죠. 브람스뿐만 아니라 어느 작곡가의 곡을 접하든 계속 배우는 자세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권혁주, 이미연, 이정란, 이한나) / 유튜브 채널(예술의 전당)

내 몸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거나 내게 딱 맞는 곡이 있나요?

우선 월튼의 곡을 꼽겠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작곡가인 데다가, 작년에 월튼 비올라 협주곡까지 연주했습니다. 힌데미트의 소나타도 좋아합니다. 아직 힌데미트 비올라 협주곡은 협연해보지 않았는데,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이 두 작곡가의 곡이 제게 잘 맞습니다.

무대에서 꼭 연주해보고 싶은 곡 있나요?

바흐 첼로 현악 전곡을 연주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현대곡을 좋아하는 것 못지않게 바로크 음악을 사랑합니다. 바흐의 일부 곡을 연주한 적 있지만, 바흐 무반주 첼로 전곡을 선보일 기회는 없었어요.

이한나 바흐 첼로 무반주 전곡 가상 포스터 / 이상권

연주자로서 꼭 달성하고픈 목표가 있나요?

계획적으로 목표를 상정하는 편은 아니에요. 지난 대관령국제음악제 무대에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평창겨울음악제에 참여했습니다. 이처럼 음악제에 참가하고 싶거나 어떤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대로 마음에 두고 있다가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씩 진행합니다.

더불어 연주자로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계속 늘리고픈 바람이 있습니다. 비올라 특성상 리사이틀이나 협연이 많진 않아요. 이런 기회를 더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무대에서 객석과 소통하는 연주자로 남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연주일정을 소개해주세요.

잠시 미국에 다녀와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가까운 일정으로 5월에 협연과 리사이틀이 있고,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와 스프링페스티벌에 참가합니다.

앞으로 음악을 더 사랑하는 연주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올리스트 이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