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김광주 선생님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이십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스승으로부터 계승 받으신 건가요? 

주요무형문화재는 스승과 제자 관계라고 자동으로 계승되진 않습니다.

정부에서 전문가 추천을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이렇게 선정된 대상자가 전통문화 계승자로 적합한지 문화재 의원이 기간을 두고 조사를 합니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심의와 평가를 거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합니다. 저 역시 이 과정을 거쳐 1997년에 주요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습니다.

거문고 – 고흥곤 국악기 홈페이지(http://www.gohgon.com)

2003년에 개량 거문고를 만드셨죠?

다류금(多流琴)은 민속악에서 정악까지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거문고입니다. 이 다류금이 빛을 보려면 작곡부터 연주까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잘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거문고는 개량이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말씀하신 대로 거문고는 구조상 개량이 어렵습니다. 북한에서는 개량을 포기하고 연구용으로만 쓰고요. 기존에 거문고 개량은 궤를 넓히는 등의 방식으로 변형했기 때문에, 거문고 고유의 소리를 잃었습니다. 저는 거문고의 궤 밑에 허들처럼 공간을 내어, 제소리를 유지하면서 더 시원하게 울리도록 개량했습니다. 음역과 음량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에 공연할 때도 소리가 좋습니다.

전통 가야금과 개량 가야금을 모두 제작하시는데, 두 가야금 차이가 있나요?

개량 가야금은 전통 가야금하고는 소리가 조금 다릅니다. 다만 퓨전 음악이나, 양악과 협연할 때에는 개량 가야금이 여러모로 잘 어울립니다.

개량 가야금과 전통가야금 소리가 다른 주요원인이 줄 재질인가요?

네, 명주실이 아닌 합성 줄을 씁니다. 명주실은 음이 높아지면 장력을 이기기 힘듭니다. 명주실 소리가 더 좋지만, 합성 줄을 사용해야 안정적으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고흥곤 국악기 내부

클래식 기타 제작용 목재는 다년간 건조를 한 데 비해, 선생님께서는 가야금 제작용 목재를 수년간 자연 속에서 놓아둔다고 알고 있습니다. 

양악기도 고급은 목재의 섬유질을 삭힙니다. 나무를 바닷속에 넣어 두었다가 악기를 제작한 기록도 있고요. 마찬가지로 저도 가야금 제작용 오동나무를 자연 속에서 눈비와 바람에 노출하고 볕을 쬐어가며 5~10년간 삭힙니다. 그래야 청아한 소리가 납니다.

목재는 직접 구하시나요?

네, 직접 구합니다. 좋은 나무가 있다고 연락이 오면 찾아가서 구합니다.

가야금 제작에 어떤 목재가 좋은지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30년 이상 자란 오동나무를 기준으로 합니다. 50~60년 자란 오동나무면 최상입니다. 나무의 연차만 보는 것이 아니라, 토양을 비롯해 다양한 요소가 적합한지도 확인합니다.

황병기 선생님께서 김명칠 초기작 가운데 유독 소리가 좋은 가야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 나무가 좋은 걸까요?

모든 과정이 잘 맞아 떨어져야 소리가 좋습니다. 최고급 목재를 구해도 삭히는 도중에 상할 수도 있고, 잘 삭힌 나무라 해도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제소리를 못 낼 수도 있습니다.

서양악기 제작자는 전 세계에서 좋은 목재를 공수해 와서 제작합니다. 국내산 오동나무 말고 다른 목재를 써보신 적이 있나요?

악기목 가지고 갖가지 연구를 다 해봤습니다. 결론은 우리나라 오동나무만 한 것이 없어요.

양악기 목재로 실험해보기도 하고, 중국에서 고급목재를 가져와 제작해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미국 산속에서 공수해온 나무로도 만들어봤는데 국내산 오동나무에서 나는 영롱한 소리만 못했습니다.

과거와 지금의 가야금 제작에 차이가 있습니까?

과정부터 차이가 납니다. 제가 배울 당시만 해도 장인-도제식 전승이었습니다. 지금은 교육 시스템이 잡혀서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기술적으로 많은 발전이 이뤄졌나요?

악기 제작목적이 다릅니다. 예전 가야금은 안방에서 연주하는 악기였습니다. 지금은 무대 연주에 적합하게 소리가 크게 나도록 제작합니다. 그래서 목재 관리부터 최종 완성까지 다각도로 분석하여 관리합니다.

가야금 수명은 어떻게 됩니까?

자동차에 비유해서 말씀드리자면, 택시는 5년도 안 돼서 교체해야 하지만, 출퇴근 자가용은 더 오래 쓸 수 있죠. 마찬가지로 가야금도 사용시간에 따라서 그 수명이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양악기는 연주용과 연습용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주용은 공연에 한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죠. 가야금도 연주용으로만 사용하면 100년, 200년도 더 갑니다. 가야금은 농음을 내고 짓이겨가면서 연주하니까 자주 쓰면 나무가 파입니다. 좋은 가야금도 연습용으로 사용하면 3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가야금이 처음 만들어지면 소리를 길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새 가야금을 길들이는데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옛날에는 차를 사자마자 도로를 달렸습니다. 그렇게 차를 길들이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았거든요. 요즘 생산하는 차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전엔 수준 이하의 가야금이 나오는 탓에 소리가 잘 나올 때까지 공을 들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새것이 소리가 좋습니다. 대학 입시를 한 달 앞두고 가야금을 주문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몇 년 써온 가야금보다 새 가야금이 소리가 더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지금도 전통악기 제작학과 개설에 반대하시는 입장이신가요?

현재 악기를 제작하면서 전수 장학생을 키우고 있습니다. 학교 나가서 강의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지, 제작학과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저도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단에서 강좌를 몇 번 했습니다.

악기장 고흥곤 선생의 손

전통악기 제작을 지망하시는 분께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제작에 뛰어들면 힘겨운 일입니다. 우리 문화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제작기술을 갈고닦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악기 제작자 고흥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