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현재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함께 무대에 오르죠?
삼성문화재단에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후원받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만난 바이올린 중에 가장 잘 맞아요. 원하는 만큼 소리가 잘 나와서 항상 즐겁게 연주하죠.

바이올린마다 울림의 특색이 있는데, 지금 쓰시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떤 편인가요?

다른 연주자께서 제 악기를 두고 특히 G 현이 어둡다고 말씀하셨어요. 저와 함께 오래 연주한 분이라, 그동안 제 손을 거친 여러 악기와 비교해서 말씀을 해주셨을 거예요. 저 역시 이 바이올린의 음색이 깊고 어둡다고 느껴요.

전반적으로 음향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악기라 연주할 때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예전에 피터 인펠트 현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같은 현으로 연주하나요?

과르네리 델 제수에는 피터 인펠트 현이 잘 맞아서 반년 가까이 썼어요.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에 피터 인펠트 현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궁합이 맞질 않아요.

지금은 에바피라찌를 쓰고 E 현만 피라스트로 골드와 렌즈너 등 상황에 따라 맞춰 씁니다.

클라라 주미 강(Clara-Jumi Kang) ⓒ Marco Borggreve

처음 공연장에 가면 프로젝션부터 점검하나요?

프로젝션에 집착하지 않아요. 오히려 피아니시모에 더 신경을 쓰죠. 작은 소리가 콘서트홀 3층 끝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고민해요.

바이올린은 신비하고 예민한 악기라 소리가 계속 변해요. 습도와 온도를 비롯한 연주 환경에 따라서 바이올린 소리가 클 때도 있고 작을 때도 있는 거죠. 소리를 반드시 크게 내야겠다는 생각에 매몰되면 연주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콩쿠르 경험이 많은 연주자는 보통 전달력에 더 신경을 쓰지 않나요?

전달력이 음량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이내믹을 비롯한 소리의 컬러가 다양하면 억지로 소리를 키우지 않아도 그 음악적 표현이 객석에 잘 전달되죠.

무대 리허설 시작할 때 어려운 점은 있나요?

무대 리허설에 조명을 켜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실제 공연과 리허설 환경이 차이가 클수록 연주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리허설을 진행할 때도 조명을 켜주는 게 좋아요.

며칠 전 한 공연장은 백스테이지가 너무 추웠어요. 한기에 계속 노출되어 있다가 무대에 나가면 바로 열기가 확 느껴지잖아요.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소리가 곧바로 잡히지 않기도 하죠. 이럴 때는 일단 연주를 시작하고 악기 상태를 파악해가면서 소리를 조정할 수밖에 없어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누구의 연주인지 구분이 갈 정도로 바이올린 소리가 풍부한 편입니다. 보잉이 남다른 편인가요?

보잉에 신경을 많이 쓰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난감한데, 그래도 비유하자면 활로 노래를 만드는 거니까 오른손이 중요해요.

그렇다고 제가 의식적으로 보잉을 하는 건 아니에요. 바이올린으로 노래한다는 생각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죠.

곡을 해석할 때 악보에 집중하는 편인가요?

악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좋은 판본 따져서 마련하고, 협주곡의 경우 오케스트라 총보도 꼭 구매해요. 또 암보가 된 곡이어도 항상 악보를 펴요. 악보를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거든요.

무대 리허설 진행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악보를 보며 연주해요.

악보를 본다고 바로 해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 아니죠?

악보를 본다고 곧바로 음악적 해석이 나오기 어려워요. 더구나 어떤 곡은 무대에서 한 번 연주를 마쳐도 부족하죠.

작년에 베르그 바이올린 협주곡을 무대에서 연주했어요. 이제는 이 작품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어서 뿌듯해요. 그렇지만 단번에 완성도 높은 해석을 했다고 보기엔 어렵죠. 이런 곡들은 최소한 10년 이상 꾸준히 무대에서 연주해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걸 찾아낼 수 있어요. 여러 지휘자와 좋은 악단을 거치며 계속해서 연주해야죠.

지난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베르그 바이올린 협주곡은 인상 깊었습니다.

다행히 첫 베르그 바이올린 협주곡을 좋은 악단과 무대에 올랐습니다.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항상 내 연주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특히 베르그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케스트레이션이 강해서 독주가 묻힐 우려가 있는데, 오케스트라가 저를 잘 배려해줘서 좋은 연주가 나온 것 같아요.

투어 프로그램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제가 제안한 곡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독주자가 원하는 대로만 이뤄지는 공연은 적어요. 이미 오케스트라는 시즌에 맞게 교향곡이 마련되어 있어서 여기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맞춰야 하죠. 또 지휘자와 악단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이런 문제도 있어요. 제가 만약 브람스 협주곡을 하고 싶어서 제안해도, 악단에서 작년에 같은 곡을 연주했다면, 올해 다시 추진하기가 어렵죠.

결국, 예상치 못한 프로그램을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작년엔 3일마다 다른 협주곡을 해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물론 윤이상, 베르그, 시마노프스키 등 새로 익히는 작곡가의 작품을 제외하면 익숙한 곡이 많았지만, 그런데도 일정이 빼곡하니까 ‘의식 상태(mind set)’를 계속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작년에 힘든 일정을 소화하셔서 올해 제네럴 매니저 계약을 하신 건가요?

그동안 매니저 업무까지 병행하면서 배운 건 많아요. 어느 연주회장에 가더라도 이것저것 알아봐야 했어요. 또 섭외부터 시작해서 무대에 오르기까지 이메일을 30통 이상 주고받는 일도 흔하거든요. 사소한 부분까지 혼자서 다 신경을 쓴 만큼 무대에 오르는 일에 더 애착이 갔어요. 그렇지만 계속 혼자서 다 하다간 병나겠더군요. 더는 무리란 생각에 제네럴 매니저도 신속하게 결정했어요.

기돈 크래머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신 소감은요?

기돈 크래머와 함께한 시간은 하늘이 준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현대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고, 연주자는 어떤 자세로 현대 음악을 맞이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죠.

현대음악에서 바이올린 연주는 노래라기보다는 효과음처럼 상상력이 담긴 소리라서, 직접 해보지 않고 생각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기돈 크래머는 편곡으로도 유명한데, 연주 활동 중에 편곡 계획은 있나요?

편곡은 그만한 능력이 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기돈 크래머의 경우는 고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거의 모든 레퍼토리를 제대로 익힌 연주자에요. 그렇기 때문에 기돈 크래머는 편곡할 수 있는 입장이고, 지금 저에겐 이미 나와 있는 좋은 작품을 최대한 많이 소화하는 일이 더 중요하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다른 연주자와 비교해서 강점으로 내세울 게 바로 생각나진 않아요. 다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레퍼토리를 넓혀왔고, 바로 이 경험들이 제게 큰 자산이죠.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할수록 연주자의 색깔이 명확해져요. 이를테면 특정 작곡가나 시대에 강점이 있는 연주자가 되는 것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청중이 자연스럽게 판단해주는 일이지, 그 음악만 고집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어릴 적부터 레퍼토리를 확장한 건 당시 선생님의 지도에 따른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만나는 스승마다 레퍼토리를 늘릴 수 있게 지도해주셨어요. 특히 7살 때는 도로시 딜레이 선생님이 일주일마다 새 협주곡을 익히게 한 적도 있어요. 하루 이틀에 한 악장을 외워야 하는 거죠. 결국, 3년 동안 협주곡을 20개 넘게 익혔어요.

2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오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관이 달라졌나요?

음악관은 시간을 따라서 변해가겠죠. 그렇지만 음악을 대할 때마다 늘 변치 않으려는 자세가 있어요.

저는 클래식 음악에서 연주자는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평생 그런 거죠.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작곡가의 작품을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무대에 오르고 내릴 때 항상 이런 마음을 유지하기 때문에 음악에서 배우는 지점도 많아요. 특히 같은 작곡가의 협주곡, 독주곡, 실내악 작품을 계속해서 다룰수록 그의 작품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죠.

올해 레코딩 계획은 있나요?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회가 오면 음반을 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렇지만 레코딩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사실 제 음반도 잘 듣지 않아요. 왜냐하면, 6개월만 지나도 제 음악적 스펙트럼은 넓어져서 당시와 똑같은 해석이 나오지 않거든요. 만약 지금 다시 [슈만∙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로망스] 를 다시 녹음한다면, 분명 새로운 연주가 나올 거예요.

제게는 연주회에서 관객들과 음악하는 교감하는 시간이 소중해요.

인스타그램(@clarajumikang) 2017/08/11

촛불만 켜놓은 작은 무대에 오른 사진을 본 적 있습니다. 그런 연주회에서는 객석과 교감이 잘 되나요?

옛날에 지하 물 저장고로 쓰이던 곳에서 연주회가 열렸어요. 아마 50~80명 정도? 관객들과 촛불만을 켜 둔 채 바흐를 연주했죠. 공간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방이 돌로만 되어서 울림이 엄청났어요. 물론 이런 환경에서 소리를 잡아가며 연주한 맛도 있었죠.

앞으로 연주자로서 바라는 모습이 있나요?

흔히들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고 하잖아요. 말은 쉽지만 정말로 실천하는 건 어려운 거 같아요. 저는 이미 배운 곡이라도 새롭게 배운다고 여기면서 연주해요. 이렇게 늘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며 음악 외에는 딴 길을 두지 않는 삶을 그리고 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