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Q. 주요 레퍼토리가 있으시지만, 특정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경우가 드뭅니다. 여러 작곡가를 고르게 다루시는 편을 선호하시나요?

제 마음을 움직이면 누구의 곡이든 막론하고 파고들지요. 어느 작곡가를 좋아하냐고 누가 제게 물어오면 한 사람을 꼽아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한 작곡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곡을 공부할 수는 있습니다. 반면 무대 선곡은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거든요. 세상에는 방대한 피아노 레퍼토리가 존재하잖아요. 연주자가 여러 작곡가의 작품 가운데 원하는 곡을 고르는 무대도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Q. 곡을 해석하실 때 악보에 집중하는 편입니까? 문헌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입니까?

어느 곡이든 그 곡의 매뉴스크립트, 초판에서부터 그 후에 나온 여러 악보를 모두 봅니다. 그렇지만 악보 자체가 작곡가의 의도를 전부 담아내기는 어렵거든요. 비유하자면 악보는 해상도가 낮은 스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악보에 적히지 않은 곡의 세세한 부분은 연주자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마다 연주가 제각기 다른 겁니다. 또한, 될 수 있는 한 많은 자료를 접해서 작곡가의 의도를 추측해 내는 게 연주자가 연구해야 할 점이자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Q. 오는 9월에는 김택수 작곡가의 최근작 “파도”를 연주하십니다. 원작자에게 (곡 수정을 포함한) 의견을 제시하는 편입니까?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 성 마들렌 성당에서 오르간 음반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김택수 씨에게 위촉한 곡입니다. 생상스, 뒤부와, 비도어를 포함한, 프랑스 음악 역사와 함께한 성 마들렌의 오르간으로 한국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고 싶었지요.

김택수 작곡가는 프랑스적 화음에 한국 민요의 요소를 접합해서 정말 멋진 곡을 써주셨어요. 초안을 받아 연주하고 작곡가에게 보낸 후에 만나서 곡에 대해 의논할 자리가 있었어요.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멘델스존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쓸 때 바이올리니스트 친구인 페르디난드 다비드에게 여러 번 자문을 구했다고 하지요.

피아니스트 조재혁 / 프레스토아트 제공

Q. 발레, 마술, 토크 등 음악회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십니다. 이런 무대에서 얻는 이점이 있으신가요? 혹은 관객과의 소통이 더 입체적으로 이뤄집니까?

실내악에서는 다른 연주자들과 주거니 받거니 반응하듯이 발레에서는 댄서의 동작과 제 연주가 그렇게 호흡을 맞췄습니다. 마술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을 통해 음악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 생깁니다. 예술이라는 큰 천막을 놓고 보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장르가 공통된 목표를 향해 간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Q. (제 주변에는 조재혁 교수님 해설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한 사람이 꽤 있습니다) 클래식 대중화를 적극적으로 지향하시나요?

음악은 듣는 사람의 능동적 탐구 없이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치 모르는 언어를 처음 들을 때에는 의미 없는 노이즈로 들리다가 그 언어를 점차 알아가면서 단어가 들리고 문장이 들리면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처럼요. 반대로 음악가의 입장에서 아는 만큼 연주한다는 것도 말이 되고요.

제 음악 해설은 청중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러모로 실마리를 제안합니다. 음악의 전도사라는 명칭도 들어봤는데, 대중화보다는 그게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Q. 클래식 교육 및 해설자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피아노 연주에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나요?

교육이나 해설을 하려면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정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테크닉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이게 왜 되는지 뜯어서 다시 정리해봐야 하거든요. 교육과 연주는 서로 선순환으로 돌아가는, 모두 음악 연구의 필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Q.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잠시 놓으신 적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다시 복귀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음악을 잠시 그만두었다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주실 말씀은 있으신가요?

어릴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앞만 보고 음악을 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달리는 이유를 저 자신에게 묻게 되더군요. 결국 모든 것을 중단했었습니다. 마치 제2의 정신적인 사춘기가 온 것 같았어요.

처음엔 연습의 압박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참 좋았지요. 호기심이 강한 성격이라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고요. 특히 법대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쯤 지나니 제 마음 한쪽에서 음악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어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거치고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번 사는 인생이니 결과를 떠나서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 무렵에 박사 과정에 들어갔는데, 학교를 이렇게 즐겁게 다닐 수도 있구나 했다니까요!

Q.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로 알려지셨습니다. 특별히 스타인웨이를 선호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콘서트용으로 검증된 브랜드라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가요?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전 세계의 콘서트장에서 95%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내린 결론은 스타인웨이가 정직한 피아노라는 것입니다. 연주자가 의도한 대로 피아노가 반응을 해주기에 좋은 악기라 불리는 게아닐까요?

물론 피아노는 브랜드를 떠나서 제 의도에 충실하게 반응해주는 쪽이 좋습니다.

Q. 공연장에서 가장 먼저 점검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혹은 리허설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물론 피아노의 상태입니다. 조율은 기본이고 피아노 액션의 미세조정상태 등이 정말 중요합니다.

피아니스트는 연주장마다 상태가 다른 피아노에 적응을 빨리해서 최상의 소리를 찾습니다. 마치 물감 제조사마다 색감이 다르더라도 화가는 이를 미세하게 조정해서 원하는 색을 구현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죠.

연주장의 음향도 중요합니다.  피아노의 상태와 연주 장소의 조건에 따라 페달링과 아티큘레이션 등 연주도 달라지지요.

Q. 대형 콘서트홀에서 연주하실 때 전달력과 표현력 가운데 어디에 더 중점을 두십니까? 더불어 피아니스트로서 특별히 추구하시는 음색이 있나요?

표현의 전달이 연주의 핵심 아닐까요? 우선은 작곡가의 의도에 맞는 소리를 내는 것이고, 공간에 맞는 이상적인 소리를 찾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연주장에서는 더욱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있지만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음향을 고려하여 음량과 음색을 바꿔야 합니다.

제가 박사학위 공부할 때 만난 스승 니나 스베틀라노바에게서 음색의 콘셉트를 심도 있게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전설의 피아니스트 하인리히 네이가우스에게서 배운 많은 비법을 알고 계셨지요. 제 박사 논문도 그 비법에 관해 썼습니다. 피아노를 최대한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곡에 맞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기록했습니다.

Q. 앞으로 예정된 활동을 짤막하게 소개해주세요.

올해는 프랑스와 연관한 활동이 많습니다. 지난 8월 오르간 음반녹음 이후에 10월에는 앙굴렘의 페스티벌에서 오르간 독주회와 피아노 독주회를 엽니다. 11월에는 보르도의 피아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독주회를 갖습니다. 10월에는 독일 하노버에서 쇼팽의 곡들로 피아노 음반작업도 잡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진행 및 해설을 계속 합니다.

제 음악회를 찾아주시는 청중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