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더 스트링스(thestrings.kr)에 실림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예술가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신동으로 불린 경우는 아니었지만, 그의 연주는 성인 이후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왔다. 이제는 일찍이 더 주목을 받아온 여느 또래 연주자들보다 솔리스트로서 입지가 더 굳건한지도 모른다.

김봄소리의 위상이 뒤바뀌기까지 많은 도전이 있었다. 거의 매년 2개 이상의 국제 콩쿠르에 도전했으며, 연주 레퍼토리 역시 계속해서 넓혀왔다. 특히 같은 곡을 다시 연주할 때도 새롭게 해석하며 안주하지 않았다. 한 번에 확 뜬 계기는 없어도 무대 위에서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었다.

지난해 김봄소리는 데뷔앨범인 <비에니아프스키 & 쇼스타코비치>를 발표했으며, 카네기홀 리사이틀은 예매시작 10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 이러한 성과에 탄력을 받아 올해는 더 활발히 활동할 예정이다.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김봄소리의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봄소리의 바이올린

김봄소리는 금호악기은행에서 후원받은 ‘과다니니 튜린(G.B. Guadanini, Turin 1774)’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과다니니 튜린의 기본 음색은 조금 어두운 편이지만, 고음부에서 화려한 소리가 나요. 음색이 다양하고 폭도 넓은 편이죠.” 그는 연주할 때도 장점이 많은 악기라 소개했다. “과다니니 튜린은 음색 변화가 빠른 편입니다. 연주 도중에 악기에 의해서 음색이 바뀔 때도 있으니까요. 더불어 악기가 바로바로 반응해줘서 음악적으로 더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과다니니 가문 요약도

 

김봄소리는 과다니니 튜린을 쓰기 직전에 ‘주세페 과다니니(Giuseppe Guadanini, 1794)’를 후원받아 연주했다. 제작자인 주세페(Giuseppe, 1753 – 1805)는 튜린을 만든 지오반니 바티스타(Giovanni Battista, 1711 – 1786)의 아들이다. “우연히 과다니니 가문 악기를 연이어 후원받은 거죠. 과다니니 중에서도 황금기에 탄생한 악기라 감사한 마음으로 연주했죠.” 두 악기의 특성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주세페 과다니니는 볼륨이 크고 악기 자체도 큰 편이에요. 음색이 밝고 화려한 편이죠. 반면 과다니니 튜린은 말씀드린 대로 어둡고 깊은 음색을 지녔습니다.”라고 답했다.

바이올린 음색은 어떤 현을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객석에서 김봄소리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 현을 섞어서 쓰고 있었다. “A-D-G 현은 피터 인펠트 파이 현을 사용해요. 이 현은 길들이는 시간은 짧고 수명은 긴 장점이 있는 데다가 따뜻한 음색에 볼륨도 커서 전반적으로 균형이 아주 잘 잡혔죠. 반면 E 현은 상황에 따라 교체합니다. 굵고 강한 소리를 위해서 웨스터민스터 굵은 현으로 쓸 때가 있지만, 이 제품은 음 이탈 위험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E 현으로 주로 렌즈너 제품을 쓰는 편이죠.”

Bomsori Kim | H. Wieniawski  | Violin concerto no.2 | 2016  Wieniawski Violin Competition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콩쿠르 참가할 때는 전달력 좋은 현을 택해서 쓰고, 그 후에는 현 선택 폭이 넓어진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김봄소리는 “콩쿠르 참가한 시기에도 현을 계속 바꿔서 사용했어요. 결국, 벨런스가 중요하잖아요. 소리만 크고 음색이 깊지 않으면 메리트가 없으니까요.”고 말했다. 표현력과 전달력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진행되자 그는 리허설 도중에 맨 뒷좌석까지 잘 들렸는지, 오케스트라에 바이올린 소리가 묻히지 않았는지 재차 물었다. 전달력에 신경을 많이 쓰냐는 물음에 그는 “그럼요. 아무리 잘 표현해도 들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무대에 나가면 평소보다 몸이 굳기 때문에 소리가 눌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거든요. 소리가 눌리면 귀에서는 시끄러운데 무대 끝까지 뻗질 못해요.” 김봄소리는 큰 홀에서 소리 전달력이 좋아지기 위해서 “스케일과 보잉” 연습에 힘쓴다고 했다. “특히 보잉은 소리를 길게 나가는 것에 직접 관여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의 연주자

김봄소리는 현대음악에 관심이 많은 연주자다. 다가오는 스케줄 가운데 4월 바르샤바에서 연주할 ‘펜데레츠키 협주곡 2번’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작곡가 선생님과 같이 상의도 하고 여쭤볼 시간이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미국에서는 현대 음악이 활발한 편이고 연주회 프로그램에 한 곡은 현대음악 작품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문화 속에서 미국 작곡가도 많이 발굴되었고요. 한국에도 재능 있는 작곡가가 많잖아요. 이들의 작품을 더 알릴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어서 김봄소리는 “아무래도 국내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는 현대음악을 다루는 비중이 작습니다.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현대곡을 요구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일이 점점 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오래전 죽은 작곡가 작품은 연주자가 악보와 스케치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놓고 해석한다. 현재 살아있는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어떨까. 이 의문에 대해서도 김봄소리는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작곡가 중에 바이올린 전공자가 아닌 분도 많잖아요.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가 있으셔도 연주자의 시각과는 다르죠. 현대음악은 실제 악보를 놓고 연주하면서 느낀 점을 작곡가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어요. 연주자 입장에서 현대 음악이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지점이 많습니다.”

Bomsori Kim | Michael Jarrell | …aussi peu que les nuages… | 2015 Queen Elisabeth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결선에서 현대곡을 연주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작곡가인 미하엘 야넬(Michael Jarrell)과 스카이프로 직접 소통할 기회가 있었어요. 곡의 템포가 연주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빨라서,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했죠.” 김봄소리는 “작곡가가 만든 곡에 연주자의 의견을 담을 수 있기에 현대곡 해석이 더 자유롭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세계 무대에서 도약하는 2018

지난 13일에 ‘커쉬바움 어소시에이트(kirshbaum associates)’와 북미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김봄소리는 “그동안 유럽 위주로 활동했는데 앞으로는 북미까지 무대를 넓힐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 기획사와 계약했어요”라고 밝혔다.

커쉬바움 어소시에이트는 소수정예로 유명한 클래식 기획사다. “큰 회사는 워낙 대가들이 많아서 기회가 있어도 젊은 아티스트에게 차례가 안 올 수 있어요. 저는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입장이라 외형적인 규모보다 신경을 써서 일해주실 분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번에 계약한 북미 기획사는 서울대학교 은사님이신 김영욱 교수님께서 90년대 초에 속하셨던 곳이에요. 여러 고민 끝에 좋은 기획사와 연결이 돼서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올해 김봄소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굵직한 일정이 많다.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와 유럽투어를 비롯해 해외 무대 위주로 활동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3월에 경기필과 협연, 8월에 금호아트홀에서 리사이틀 등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자주는 못 들어오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